매튜 본의 <백조의 호수> ┃억압된 욕망의 환상적인 표출

<백조의 호수>, 이전의 기억은 모두 거짓말이다. <매튜 본-백조의 호수>는 은혜로운 발레리노를 통해 격동적인 몸짓과 더불어 유쾌한 유머 코드를 곳곳에 심어놓은 작품이다. 발레리나 중심의 공연이 물 위에 떠 있는 백조의 모습이라면, 이 공연의 발레리노는 물에 떠 있기 위해 무수히 물질하는 백조의 다리와 같다.

남자가 만들고 연출한, 예민한 섬세함


섬세함은 여자만의 것이 아니다. <매튜 본-백조의 호수>를 본 사람이라면 아마도 이 말에 공감할 것이다. 무용수들이 만들어내는 하나의 손 동작, 움직임은 백조를 표현해낼 뿐만 아니라 인간의 몸 그 자체의 아름다움까지 보여준다. 여자들을 설레게 하는 식스팩 복근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여기에는 팔을 올리고 다리를 휘는 아주 세밀한 동작까지도 우아하고 섬세하다.
이런 섬세한 동작은 말없이 진행되는 극에서도 큰 역할을 한다. 사실 무언극을 이해하는 것은 까다로운 일이다. 그리고 그것을 표현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매튜 본-백조의 호수>에서는 캐릭터의 성향, 마음까지도 탁월하게 보여준다. 그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아주 섬세한 동작도 동작이지만 무대 장치의 미장센도 한몫한다. 가령 왕자가 병원에서 의사와 간호사에게 둘러싸이는 장면에서는 조명을 이용해 과장된 그림자를 보여준다. 의사와 간호사의 과장된 그림자에 비해 한없이 작은 왕자의 그림자는 외부에 억압받고 불안한 왕자의 심리를 효과적으로 나타낸다.

무엇보다도 매튜 본은 기존의 <백조의 호수>와 달리 현대적으로 꾸민 <백조의 호수>를 보여주는데 바에서 디스코를 추는 장면이나 왕자가 사랑하는 여자의 백치미 또한 유쾌하게 그려낸다. 중간마다 배치된 웃음 코드는 적절히 배합돼 극을 지루하지 않고 관객이 몰입하게 한다. 이런 장면들은 만화 같기도 해서 웃다가 진지해지기를 반복해도 그 경계가 매끄럽게 느껴진다. 여기서부터 우리는 발레의 환상 속으로 빠져드는 것이다.

우리 안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4막 구성으로 된 <매튜 본-백조의 호수>를 단순히 내용만을 이야기하자면 허무맹랑하다고 느껴질 수도 있다. 왕자는 좋아하는 여자가 생겨 자신의 엄마인 왕비에게 소개하지만 둘의 관계를 반대하는 엄마, 그런 상황에서 좌절하는 왕자에게 동경과 사랑으로 나타나는 백조, 그 후 무도회에서 낯선 남자로 나타난 백조는 모든 여성의 선망의 대상이 되고 심지어 왕비의 곁에 남자로 서게 된다. 그 모습에 왕자는 참지 못하고 총을 겨누게 된다. 그로 말미암아 왕자가 사랑했던 여자가 죽게 되고 낯선 남자는 왕자를 향해 총을 겨눈다. 그 후 병이 든 왕자는 앓아눕고 그런 왕자를 지키려는 백조는 다른 백조 무리에 의해 그만 죽어버리고 병석에 있던 왕자 또한 백조의 죽음을 보고 죽게 된다.
이 단순한 내용 안에는 욕망에 대한 의미가 담겨 있다. 프로이트가 말하는 모든 욕망의 기저에는 어머니에 대한 성적 욕망이 있다. 그는 어머니에 대한 성적 욕망이 우리가 다른 어떤 일을 하도록 하는 원동력이라고 한다. 이런 성적 욕망은 다른 욕망을 가지게 하는 원동력인 동시에 아버지로부터 거세당할 수도 있다는 거세 공포를 느끼게 한다는 점에서 우리 스스로 무언가 하려는 욕망을 자제시키는 무의식적 억압이기도 하다.
여기서 왕자는 자신과 사랑하는 여자의 관계를 어머니로부터 인정과 사랑을 받고 싶어 한다. 그러나 왕비는 그것을 끝까지 인정하지 않는다. 사실 왕자는 왕비가 자신과 애인의 관계를 인정하지 않으면 둘이 어디로 도망가든지, 다른 방법으로 그것을 무너뜨릴 수도 있다. 하지만, 왜 왕자는 굳이 자신의 엄마에게 인정받으려고 하는 것일까? 이것이 프로이트가 말하는 어머니에게 인정받고자 하는 욕망, 어머니를 성적 대상으로 보는 무의식적 욕망인 오이티푸스 콤플렉스이다.

벗어 던진 전통예술의 억압, 그리고 피어나는 상상


뮤지컬 <캣츠>에서 배우들이 단지 고양이처럼 보이려 한 것이 아니라 고양이 그 자체가 되려고 했다면 <매튜 본-백조의 호수>에서 배우들은 백조 그 자체가 되려는 노력을 보였다. 그리고 그것은 성공적이었다. 백조는 물 위에 떠 있지만은 않는다. 그런 백조의 다양한 모습을 포착한 매튜 본은 그것을 그대로 발레 동작에 응용시킨다. 그것은 백조처럼 ‘보이게’가 아닌 ‘백조화’되는 것이다.
기존의 발레와 확연한 차별성을 가지는 <매튜 본-백조의 호수>는 오늘날의 예술을 잘 보여주는 하나의 예이기도 하다. 기존의 발레는 전통예술적으로 인공미와 균제미를 중시해 백조의 실제 동작과는 상관없이 백조의 우아한 이미지만 포착해 그것을 인간이 하기 어려운 고난도의 동작으로 승화시켰다. 정형화되고 인공미적인 우아함은 전통 발레 속 발레리나만의 전유물이었다. 그러나 오늘날의 현대예술은 이를 처절히 파괴한다. 이런 현대예술의 모습을 <매튜 본-백조의 호수>는 잘 보여주고 있다. 전통 발레에서 백조가 발레리노가 될 수 있으리란 상상조차 못했다. 그런 점에서 <매튜 본-백조의 호수>는 전통예술을 깨는 것이며 억눌린 욕망을 그대로 드러낸 것이다.
공연 초반에 나오는 팝아트는 그래서 더 상징적이다. 팝아트야말로 현대예술을 대표하는 예술이며 전통예술의 형식적이고 규칙적인 미를 부정하고 우연성과 일상을 심미화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뿐만 아니라 현대적인 다양한 요소를 발레와 접목함으로써 이것은 곧 전통적인 발레의 형식을 전복시키겠다는 매튜 본의 당당한 외침이며 전통예술에 억압되었던 현대예술의 외침이기도 한 것이다.
매튜 본의 힘은 상상으로 부상한 관객으로부터 눈치챌 수 있다. 공연 내내 환상 속에서 함께 호흡한 관객은, 발레라는 것이 특별한 누군가의 소유물이 아니라 상상력을 품은 우리들의 것이라는 암묵적인 공감대를 유지한다. 막이 내린 뒤 다양한 연령대의 관객은 저마다 흐뭇한 미소를 머금으며 현실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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