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붑 알엄┃지구인, 소통을 생각한다

독립영화계의 덴젤 워싱턴이 떴다. 한국인 여고생과 방글라데시 이주 노동자 간의 소통을 그린 영화 <반두비>의 남자 주인공 마붑 알엄Mahbub Alam. 작년 말 프랑스 낭뜨3대륙영화제에서 경쟁 부문 대상을 받은 중심에는 그가 있었다.

우연이 빚어낸 운명, 영화와의 인연

그가 출연한 <반두비>는 한국인 여고생과 방글라데시 이주 노동자 간의 소통을 위트 있고 사실감 있게 그려 국내외로 호평받은 영화다. 지금의 그 자리가 있기까지 영화를 꿈으로 삼았던 것은 아니었다. 그가 한국에 온 것은 99년, 잠시 생계를 위한 일을 하려는 의도였다. 하지만, 몇 년의 세월이 흐르고 이주 노동자의 부조리한 현실에 눈을 뜬 뒤 적극적인 노동운동의 길을 걸었다. 당시는 날마다 투쟁이었고, 목에선 쇳소리가 났다. 그때 명석하게도 그는 ‘무엇’이 아닌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가를 고민하는 방법을 택하게 된다. 그의 선택은 바로 미디어. 본인과 같은 이주 노동자의 목소리를 영상으로 내고자 처음 카메라를 접하고 하나씩 차근차근 기술을 배워나갔다. 뚜렷한 목적이 있던 그에게 기술은 전혀 방해되지 않았다.

처음엔 단순히 현장을 기록하는 작업이었어요. 같이 활동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살아가는 모습을 하나하나 담았죠. 그러다가 저와 생각이 같은 사람들이 모여서 이주노동자방송(MWTV)을 만들었어요. 거기서 방송으로 노동자들의 인권문제 같은 부분을 다루었죠. 그리고 나중에는 제가 나서서 할 수 있는 부분을 찾아 다큐멘터리도 만들었어요.

직접 작품을 연출해가며 영화를 알아가던 그는 우연한 기회에 신동일 감독의 영화 <나의 친구, 그의 아내>에 캐스팅되었다.

이런 인연으로부터 2년 뒤 그는 <반두비>의 남자 주인공 ‘카림’으로 서게 된다. 처음부터 주인공은 아니었다. 원래 그의 역할은 ‘카림’에 맞는 인물을 섭외하는 것. 하지만, 시놉시스를 접한 그는 캐릭터에 끌려 감독을 설득했고 직접 시나리오 작업에도 참여하는 열성을 토해냈다. 캐릭터에 맞춰 12kg을 감량하기까지, 그는 그의 모든 것을 영화에 쏟아 부었다.

제가 프로 배우는 아니지만, 그만큼 더 잘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밥도 굶어가면서 매일 운동하고 연습했죠. 또 촬영하던 때가 7,8월 경이었어요. 더워서 땀은 흘리는데 (체중 감량 때문에) 물만 먹어야 했죠. 정말 도중에 쓰러질 뻔했어요. 그리고 장르가 멜로여서 다른 영화보다 더 어려웠죠. 이 모든 게 저에겐 큰 도전이었어요.

씨네아스트로서 당당한 목소리를 내다

영화 <반두비>로 알려진 그이지만, 그의 출연작과 연출작은 끊임없이 계속되고 있었다. 영화 <쫓겨난 사람들(2007)>, <리터니(2009)> 등 이주노동자의 인권에 관한 다큐멘터리 영화를 연출한 바 있고, 출연작은 영화 <복수의 길(2004)>로부터 시작해 <로니를 찾아서(2009)>, <시티 오브 크레인(2010)>과 <러브 인 코리아(2010)>까지 6편에 이른다. 그는 영화와 함께 살면서 필모그래피의 밑그림을 그려나갔다.

이 때까지 이주노동자를 다룬 영화를 보면 실제와 다른 모습들이 많아요. 다들 착하고, 순진한 비슷한 성향의 사람들이 나오죠. 하지만, 좀 잘난 척도 하고 화를 낼 수도 있잖아요? 나와 다르다고 해서 어떤 한가지의 모습으로만 규정하지 않고 다양하게 생각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그러기 위해선 영화에서 먼저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는 시도가 있어야죠.

그를 만난 날은 이주노동자영화제(MWFF)의 개막일이었다. 올해로 5회째를 맞는 이 영화제는 이주민의 삶을 다룬 영화를 상영하는 축제로, 그는 2회와 4회 때 집행위원장을 맡기도 했다. 올해는 직접 기획과 제작, 출연까지 맡은 <러브 인 코리아>란 작품으로 참가했다. 이제는 어엿한 한국 독립영화계의 구성원이 된 그는 현재의 독립영화 시스템에 대해 한마디를 던졌다.

<워낭소리>, <똥파리>처럼 좋은 독립영화가 많습니다. 이외에도 상업영화가 다룰 수 없는 다양한 주제의 영화가 많죠. 이를 위해 다방면의 지원이 필요한데, 현실은 그렇지 못해요. 독립영화만 해서
는 먹고 살기 어렵다고 말하는 이들은 허다하고, 직접 자기 집 전세금을 빼서 영화를 찍는 이들도 많아요. 한국의 독립영화 환경이 정말 열악한 거 같아요.

그는 영화를 소통이라고 정의 내렸다. 다양한 사람이 여러 주제로 갖가지 색깔을 지닌 이들에게 펼치는 장이란 뜻에서다. 그가 어려운 환경을 토로하면서도 벌써 차기작을 준비하고 있는 것은 세상과 소통하고 싶은 욕망의 발로였다.

외국인이 아니라 난 지구인이다

그는 최근 책을 쓰기도 했다. <나는 지구인이다>라는 제목의 이 책은 그가 한국에서 살면서 보고느낀 모든 경험을 꾹꾹 눌러 담아낸 자전적 이야기다. 종교나 가족 얘기 같은 민감한 부분까지도 솔직 담백하게 기술한 이 책은 그에게 부담이면서 또 하나의 재미있는 도전이었다.

처음에 한국에 올 때, 이렇게까지 오래 있을 줄은 몰랐어요. 잠깐 2,3년만 일하고 다시 돌아가려고 했는데 어쩌다 보니 11년째 이곳에 살고 있죠. 가끔은 제가 한국인이라는 생각을 할 때가 있어요. 처음에는 거부감이 있었지만 좋아하게 된 한국문화••• 이런 점을 생각할 때, 과연 ‘나는 누구인가’라는 생각이 들었고, 이 문제를 책을 쓰면서 풀어보고 싶었어요. 한 마디로 책을 통해 제 삶을 찾아보려고 했던 거죠.

그가 한국에서 가장 많이 듣는 말은 ‘어느 나라 사람이냐’는 질문이다. 그럴 때마다 그는 지구인이라고 답한다. 이 지구인이라는 말에는 그가 꿈꾸는 이상적 사회가 담겨있는 듯했다. 인종과 민족, 국가의 경계를 넘어 다른 사람과도 함께 어울려 살 수 있는 사회 말이다. 다름을 틀림이 아닌 차이로 받아들이는 사회를 위해서 우리에게 필요한 자세는 무엇일까?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이주민과 만나는 일이 많아질 거에요. 이건 분명한 사실이죠. 결국 함께 살아가는 노력을 더 많이 기울여야 해요. 그러기 위해선 주위에 관심을 갖는 것이 필요하죠. 관심이라는 게 대단한 것이 아니에요. 내 입장을 말하기 전에 상대방의 입장도 한번 생각해 주는 것이죠. 항상 같은 옷을 입고, 같은 음식을 먹고, 같은 사람을 만나면 재미없잖아요? 저는 수십 나라의 친구들이 있어요. 그 친구를 만날 때마다 다른 문화를 접하죠. 굳이 해외에 나가지 않더라도 다양한 이주민과 친해지면, 풍요롭게 살 수 있지 않을까요?

영화 <러브 인 코리아>를 보기 위해 들어선 극장 내에선 국적과 인종이 다양한 사람이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는 영어와 뱅갈어(방글라데시 어), 한국어를 섞어가며 그들과 함께 친근하게 어울리고 있었다. 그 속에서 반달 눈을 그린 그의 행복한 얼굴에서 진짜 지구인의 모습을 보았다

5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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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재밌게 읽었어요~!
  • DK

    @한종혁 기자 댓글을 함축적으로 다신듯한데요. '그에게서는 들을 수 없었던 이 분의 시각으로 여러가지를 들으니 재미있습니다.' 제가 마붐알엄 감독에 대한 정보가 별로 없어서 그러는데 말씀하시는 의미가 궁금합니다.
  • 한종혁

    반두비 영화의 감독을 올해 상반기에 만난 적이 있습니다.

    그에게서는 들을 수 없었던 이 분의 시각으로 여러가지를 들으니 재미있습니다.
  • DK

    마붑알엄씨의 행보가 아름답네요. 외국인노동자에 대한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사람들이 편견의 프레임으로 접근하는 것에 대한 문제를 인식하고 미디어를 통해 자신의 목소리를 피력, 다문화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위해 노력하는 멋진 청년이라고 생각됩니다. 홍기자님 기사 잘 봤습니다..ㅋㅋ
  • N

    워후,반두비 아직도안봤는데 한번봐야겟네요 그나저나 12kg감량이라니....엄청난 열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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