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의 저편에서 추는 화해의 춤, 로베르 르빠주 연출 <달의 저편>

인류는 정말로 달이 궁금해서 달로 갔을까? 아니면 마침내 달을 찾아간 나를 뽐내려고 달로 갔을까?

스트롭 조명이 돌아가며 거울과 함께 연극이 시작된다. 무대를 가득 채운 커다란 거울은 관객인 나를 비춘다. 관객으로서의 나를 무대 위에서 마주하는 것은 처음이라 흥미롭다. 그 때 주인공 필립은 말한다. 인간이 달로 간 이유는 호기심이 아니라 나르시시즘 때문이었다고. 거울 속 나를 찾던 눈길이 연못을 한없이 바라보던 나르시스 같아 괜스레 부끄러워지고, 그렇게 막이 오른다.

연극은 소련과 미국이 경쟁적으로 달에 인간을 보내던 때의 영상들과 극 중 형제의 이야기가 중첩되며 흘러간다. 그 두 이야기는 형인 필립이 대중문화와 우주 프로그램을 연구한다는 지점에서 만나게 된다. 그는 지구로부터 별들에게 닿을 수 있는 구조물인 우주 엘리베이터 옹호자이며, 그를 구상한 콘스탄틴 치올콥스키를 깊이 존경한다. 그는 논문이 언제나 거절당하는, 외계 생명체에게 보낼 영상을 열심히 찍는, 공상에 가득 찬 사람이다. 그의 동생 앙드레는 잘 나가는 기상캐스터로, 형과 다르게 사교적이고 현실적인 사람이다. 동전의 양면처럼 좀처럼 만날 수 없던 두 사람은 어머니의 죽음을 계기로 오랜만에 마주하게 된다. 어머니가 남기고 간 공간을 정리하는 일이 두 형제에게 숙제로 주어지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 숙제를 해결하며 둘은 엉켜있던 과거를 다시금 돌아보고, 서로를 이해하며, 마침내 화해하게 된다.


<사진제공> LG아트센터 (photo by 우종덕)

우리는 화해할 수 있을까

인간이 달로 향한 것은 달에 대한 순전한 호기심 때문이었다고 하지만 필립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옛날 사람들은 달을 거울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달은 우리의 모습을 생생히 비출 것이라 생각했고, 결국 인류는 달에 비친 자신들의 모습을 확인하러 달로 간 것이었다. 달에 비친 지구가, 그리고 그곳에 살고 있는 우리가 얼마나 멋진 존재인지 확인하기 위해!
미국과 소련이 경쟁적으로 달 탐사에 나선 것은 필립의 생각을 입증해준다. 결국 ‘내’가 달에 먼저 도착하기 위한 두 국가의 끊임없는 경쟁은 자신의 우위를 과시하기 위한 것이었고, 내 존재를 입증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달에서 발견한 것은 찬란한 지구의 모습이 아니었다. 정확히 표현하면 ‘달의 저편’에서 발견한 것은 지구가 아니었다. 끝없이 이어지는 무한한 공허, 공허감 그 자체였다. 어머니가 남긴 마지막 생명체였던 금붕어의 이름이 베토벤이라는 것과 필립이 존경한 과학자 치올콥스키가 열 살에 청력을 잃었다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침묵만큼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완전한 공허가 있을까. 베토벤과 치올콥스키는 달의 저편에 가닿지 않고도 깊은 공허를 경험했던 사람들일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달의 저편에서, 왜 공허를 마주해야 하는가. 그 이유는 필립이 자전거를 타고 달렸던 그 날 밤 달을 보고 느낀 감정을 통해 알 수 있다. 필립은 유독 붉게 보였던 달을 보며, 왜인지 달이 피를 흘리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우리는 결국 달의 혈육, 이 우주의 혈육이 아닐까 생각했다. 비로소 나에게서 벗어나 우리를 본 것이다. 깊은 공허를 제대로 마주해야만 이러한 깨달음, 필립의 말을 빌리자면 지구는 피자에 불과하고 가장 중요한 것은 화해뿐이라는 깨달음을 얻는 것이다. 결국 우리는 언제고 불현 듯 찾아오는 공허를 필연으로 공유한 운명공동체이고, 우주의 혈육이며, 서로 연결되어 있고, 그렇기에 화해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나 자신 밖에는 안중에 없던 나르시스들이 고개를 들어 서로를 바라보고, 우리가 된다는 것이다.
연극의 마지막 장면에서 필립은 유영한다. 동생과 드디어 저녁 식사를 하러 가는 그 길에서 필립이 내딛는 발걸음들은 비로소 춤이 된다. 화해해야만 하는, 화해할 수 있는 나와 너, 그리고 우리는 그렇게 춤을 춘다. 달의 저편에서 무한한 암흑을 배경으로 그렇게 춤을 춘다.

세탁실의 저편

로베르 르빠주는 이 모든 장면들을 가능하게 만든다. 필립의 유영을, 달 착륙 이야기로부터 형제 이야기로의 이동을, 우주 속에 있는 것만 같은 느낌을, 무대라는 공간에 애초에 제약이 없는 것처럼 구현해낸다. 일상의 소품들과 달 탐사 장면들을 절묘하게 연결시키고, 거울과 조명을 이용해 멋진 착시효과를 만들어낸다. 세탁실의 저편이 금세 달의 저편이 되고 그렇게 관객들은 중첩되는 두 이야기를 혼란 없이 이해할 수 있다.

르빠주의 훌륭한 연극을 보고 나오는 길, 나의 걸음도 달의 저편에서 추는 춤이 될 수 있기를 바래보았다.

LG Social Challenger 137319
LG Social Challenger 김예슬 다채롭고 무궁무진하고 고유한 대학생 작성글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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