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용┃칸을 거머쥔 영화감독

이창동과 홍상수, 임상수 등의 국내에서 내로라하는 영화감독과 함께 칸 국제영화제에 초대된 사색가가 있다. 23세의 나이로 레드 카펫을 밟은 김태용의 영광은 우연히 잘 긁힌 복권이 아니었다.

부산 소년, 운명의 영화를 만나다

대부분 어린 나이에 ‘성공’이란 단어를 품은 이들에게는 늘 그의 유력한 환경을 기대하기 마련이다. 그 역시 영화감독의 꿈을 품기에 좋은 환경에서 자라지 않았을까. 하지만, 그는 부산 남자다. 경상도 특유의 무뚝뚝한 성격을 지녔을 뿐 아니라 천주교 사제를 미래로 삼을 만큼 보수적이었다. 하지만, 어느 날 그의 삶을 뒤흔들어 놓는 사건이 발생한다.

고1 때였어요. 부산 국제영화제에서 다르덴 형제의 <아들>이라는 작품을 봤어요. 그를 보고 가슴에 ‘아! 나는 영화를 찍어야겠구나!’란 문장이 확 박히더라고요. 그때부터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을 기록하는 하나의 눈이 되고 싶어 영화를 만들기 시작했죠.

그때부터 그는 행운을 단 사나이가 된다. 영화의 끈을 잡는 순간, 학교 선생님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은 것. 그는 영화를 찍는 선배와의 인연을 만들고 제작비를 대주며, 배우로서 직접 출연까지 했다. 같이 영화를 보는 취미까지 나누는 끝에, 드디어 고3 시절 그의 첫 연출작이 세상에 탄생했다.

학교 방송부 친구들과 방송부 장비를 가지고 촬영했어요. 영화 <바람이 분다(2005)>를 만들었죠. 그 이후로 <아이들은>이란 작품으로 ‘2005 서울환경영화제’에 서게 되었는데 이때 처음으로 극장에서 상영되고 관객과 만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도 현실적인 문제를 피하기는 어려웠다. 서울에 있는 대학교에 다니면서 고시원 생활을 하게 된 그는, 안 해본 아르바이트가 없을 정도로 고단한 생활을 보냈다. 그 와중의 오아시스라면, 배우와 스태프들과 함께 밤샘하면서 영화 작업을 하는 하루하루였다.

어머니의 성함이 ‘영화’거든요 영화가 제 운명인 것 같아요(웃음).

23세의 나이에 밟은 칸의 레드 카펫

이 젊은 감독은 세계 3대 국제영화제 중의 하나인 칸 국제영화제의 63번째 무대에 홍상수 감독의 <하하하>, 이창동 감독의 <시>, 임상수 감독의 <하녀> 등과 함께 초청되었다. 전 세계 학생영화 중 단-중편이 경쟁하는 공식초청 프로그램인 시네마파운데이션에 <얼어붙은 땅(Frozen Land)>이 초청된 것이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칸의 무대에서 인정한 이 작품의 시작과 끝이 공익근무 중에서였다는 점이다.

사실 입대하기 전에는 영화를 완전히 끊고(!) 생활하려고 했어요. 하지만, 훈련소에서부터 영화와 멀어질 수 없었죠. 행군하던 중에 밀입국에 대해 문제의식을 느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내무실 동기들도 ‘영화과’라는 명목으로 절 부추겼고, 결국 짬짬이 시간을 내서 <얼어붙은 땅>의 시나리오를 완성하게 되었어요. 영화 속 캐릭터의 이름은 모두 내무실 동기의 실명입니다.

본격적으로 영화 촬영을 하는 과정은 더욱 극적이었다. 모든 촬영은 단 일주일 만에 이뤄졌다. 공익요원 근무 도중 휴가를 내 합숙촬영을 통한 강행군을 시도한 것. 노력 앞에 불가능은 정녕 힘을 잃는 것일까.

부산 영도를 배경으로 촬영을 해서 스태프들이 서울에서 친히 내려왔어요, 촬영을 빨리 마치기 위해서 군대처럼 생활했죠. 배우와 스태프가 함께 먹고 자고 직접 밥도 해먹고••• 모든 것을 자급자족하며 촬영했어요. 모든 스태프 중 전 유일한 미필자였지만, 그들이 각자의 역할을 잘 수행하면서 따라줘서 무사히 마칠 수 있었어요.

그가 본인의 인생에 잊지 못할 열정의 순간을 맛보는 와중에, <얼어붙은 땅>은 전주 국제영화제에서 한국 단편 경쟁 부문 대상을 가볍게 밟고 칸 국제영화제의 시네마파운데이션 부문까지 당당히 나간다. 그는 홀로 칸에 초청되었다는 이메일을 받았고, 부모님께는 단순히 일이 있다고 얼버무리며 프랑스로 훌훌 날아갔다.

레드카펫 앞에서 제 이름이 불렸을 때, 그때 실감이 나더라고요. 부모님은 신문에서 아들의 소식을 알고는 깜짝 놀라셨대요.

이 담담하고도 겸손한 23세의 남자, 그는 더 이상 소년이 아니다.

겸손한 사색가의 행진은 계속된다

진지한 눈빛과 예리한 통찰력을 가진 그지만, 유심히 바라보기 전까지는 여느 대학생과 비슷한 모습이다. 영화를 보고 젊은 작가의 단편작품을 읽는 취미를 가진 그는 TV 속 드라마에 빠지고, 걸 그룹에 열광하기도 한다. 물론, 그에 그치지 않고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작업을 거친다.

JYP 사단의 걸 그룹을 보면 깜짝깜짝 놀래요. 박진영 씨는 정말 창의적인 사람 같아요. 그의 노력하는 모습을 보며 영향을 많이 받죠. 또, 김수연 작가를 좋아합니다. 요즘 그의 <인생은 아름다워>를 즐겨 보는데 참 아름다운 작품이에요. 지난주에도 이런 대사가 나왔어요. ‘세상보다 우주보다 나라고, 내가 먼저라고•••’ 참 멋지죠?

공익근무 중에도 영화에 대한 끈을 놓지 않았으니, 그의 미래를 의심할 여지가 없다. 다만, 어떤 색깔일지 조금은 훔쳐보고 싶었다고 할까.

먼저 공익근무를 끝내야죠(웃음). 그리고 다시 학교로 돌아가서 공부에 열중할 거예요. 생각해보니 저는 공부를 그렇게 열심히 해본 적이 없는 것 같아요. 이제는 착실히 학생의 신분을 지키려고요. 그리고 차기작은 <끝까지 모른 척>이라는 장편 영화를 준비하고 있어요. 이미 시나리오는 끝냈습니다. 그리고 어릴 적 기억을 되살려 ‘여름성경학교’를 통해 아이들의 욕망과 종교의 도덕성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고 구상하고 있습니다.

그를 만나기 전 영화감독이라면 꿈꿔보았을 칸의 무대에 섰기에 조금은 오만한 태도를 예상했다. 그런 선입견에 직격타를 맞은 건 그의 시종일관 겸손하고 진지한 모습이었다. 그는 모든 영광을 배우들과 스태프의 덕으로 돌렸지만, 본인의 어려운 재정상태와 공익근무요원의 상황에도 포기하지 않았던 열정까지 숨기기엔 그의 그릇이 너무 커 보였다. 이 세상의 일을 진지하게 바라보고 고민할 줄 아는 사색가. 언젠가 한국영화의 미래가 이 젊은 감독의 손에 움직일 것이라는 조심스러운 기대를 품어본다.

16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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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황선진

    오, 김수연 작가를 좋아하는군요 :-)
  • 황경신

    진짜 멋있어요 ㅋㅋ 이분 덕분에 다르덴형제 영화들을 찾아봤어요. 얼어붙은 땅을 진짜 꼭 보고 싶은데 아무리 뒤져도 못찾겠어요 볼방법이 없는지 저도 궁금하네요
  • 으헣

    @박보람 기자
    개인적으로 가장 기억에 남는 분이네요.^^
  • 박보람

    다시 한 번 느끼는 것이지만, 정말 대단하고 멋진 분인 것 같아요!
  • 으헣

    @이지은
    지금 볼 수 있는 방법을 찾아봤는데,
    찾기가 어렵네요 ㅠ_ㅠ
    신작 소식이 들리면 럽젠에서 발 빠르게 찾아보겠습니다.^^
  • 으헣

    @공병재
    병재님^^ 잘 읽으셨다니 감사네요~
    충분히 열심히 하고 있는데, 지금처럼 열심히 하시길요^^
  • 이지은

    영화 어디서 볼 수 있나요ㅠㅠ
    차기작도 기대되지만 여름성경학교를 통해 욕망과 종교의 도덕성! 기대되요~
  • 공병재

    형진형님 글 잘 읽고 갑니다^^
    23세에 영화에 대한 열정이 저정도로 엄청나다니... 놀라울 따름입니다. 저도 분발해야겠어요^^
  • 으헣

    @주전자안의녹차
    전역 후 작업을 하신다고 하니 곧 나올 거예요, 저도 기대가 됩니다 !
  • 으헣

    @salcho
    저보다 어린 분이셨는데 정말 제가 배울 점이 많았던 것 같아요 !
  • 으헣

    @이주현
    실제로 보면 더 귀엽습니다 ^^
  • 주전자안의녹차

    스토리 보드 참 깔끔하고 정갈하네요~! 다음에 만드실 영화가 기대되요^^
  • 이주현

    이런말이 실례가 될지 모르겠지만.. 참 귀여운신거 같습니다!
  • salcho

    참 대단한 사람이군요!! 배울만합니다.
  • 으헣

    ‘상업적이지 못한’ 이 말에 공감이 가네요 ~
    작품성과 대중성을 갖춘 놀란 감독 같은
    좋은 감독이 많이 나오길 기대해봅니다!
  • N

    외국에서 먼저 인정받는 한국 감독들이 많아지는것 같애요@.@
    우리나라에서도 충분히 잘 만들어진 '상업적이지 못한' 영화들이 각광을 받을 수 있는 날이 오면 좋겠네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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