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호 l 치열함이 낳은 희로애락

글 _ 추효정(프리랜서) 포토그래퍼 _ 고영관(phos studio)

몇 해 전 광고 촬영을 진행하고 있는 권영호를 만났다. 관계자들과 스태프만 30명은 모인 꽤 시끌벅적한 촬영장이었는데, 그의 얼굴에는 주변 사람들 하나하나 챙기며 이야기를 건네고 환한 인사를 나누는 여유로움이 묻어났다. 그것만 보았다면 사진의 결과물은 당연지사고 사람을 다루는 것에서도 ‘친절하다.’라고 평할 게 뻔했다. 그런데 지금 광고는 물론 영화와 여행, 패션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감각적이고 감성적인 포토그래퍼인 40대 그의 모습은 20대를 치열하게 살았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에게 20대는 완벽함을 향해 달려가는 한시 앞도 내다볼 수 없는 불구덩이였다. 사진으로 감동을 선사해야 한다는 작가로서의 막중한 책임감이 자리했고, 사진작가의 길을 스스로 선택한 것에 그 누구보다 본인 자신이 만족하고 싶었다. ‘와~’ 누구나 감탄사를 연발할 수 있는 오로지 그만의 사진을 통해서. 이를 이뤄낸 그는 이제서야 여유로움을 즐긴다.

자신이 선택한 길에, 믿음을 던지다

남자는 무조건 공대에 가야 하는 시대를 살았어요. 학력고사를 보고 전공을 선택해야 하는데 내 의견은 무시된 채 부모님과 선생님의 의견이 100% 이입되었어요. 결과적으로 나도 남자니까 공대에 진학해야 한다는 계산이 성립됐죠. 그런데 대학생이 되고 첫날 ‘여기 있으면 내 삶은 불행해지겠구나.’ 깨달았어요. 바로 휴학계를 내고 원점으로 돌아와 뭘 해야 할지 고민이 시작됐죠.


학창시절 그의 유일한 취미는 영화보기였다. 자신의 9할은 영화가 키웠다고 굳게 믿었던 그는 ‘영화감독’으로 진로를 정했다. 영화과에 진학할 생각으로 정보를 수집하던 중 영화과에 다니고 있는 선배에게 영화판의 실상을 전해 듣고 또다시 그의 고민은 시작됐다. 1980년대 후반인 당시의 그 길은 대학에서 영화를 전공해도 밑바닥부터 시작해 조감독을 10년 이상은 해야 감독으로 정식 데뷔가 가능했던 고단한 과정이었던 것. 3~40대까지 바라보는 게 아닌 20대에 자신의 가능성을 표현하고 싶었던 그는, 바로 ‘사진과’로 우회하게 된다.

사진은 카메라 하나만 있으면 되고, 찍어서 현상하면 바로 결과물을 볼 수 있잖아요. 지금 생각하면 굉장히 단순했던 거죠. 그런데 한편으론 전공이라는 것에 무게중심을 두지 않았어요. 사진과를 나와도 영화는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었으니까요. 일단 카메라로 시작하지만, 훗날 다른 것이 될 수도 있고요. 표현하는 도구를 한정 짓지 않았어요.

공대에서 사진과로 넘어온 자신의 선택에 대해 그는 단 차례도 후회하지 않았다. 선택한 삶이 100% 만족스러워가 아닌 자신이 선택한 길에 대한 굳건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운? 그런 것에 기대지 말라


대학을 졸업한 해, 그의 나이 스물여섯. 일반 회사에 취직했다가 적성에 맞지 않다고 생각해 연을 끊고 자유인으로 살아가던 시기. 갑작스레 찾아온 우연한 기회로 사진작가 선배의 어시스턴트로 일을 하게 되면서 그는 프로의 세계에 눈을 뜨게 되었다. 번쩍!

광고 촬영 현장을 처음 접했을 때 현장에 있는 수십 명의 시선이 사진작가에게로 집중되더군요. 사진작가는 스태프들이 각자 내는 의견을 종합해 하나의 사진으로 완성해야 했어요. 요즘은 디지털 시대라 화면으로 보면서 서로 의견을 주고받지만, 90년대 초반에는 필름카메라로 작업한 때여서 물론 스태프끼리 상의는 하지만 한 번 찍으면 그것으로 끝이었죠. 프로라는 말을 들으려면 필름에 담겨진 결과물이 모두 흡족한 상태로 만들어져야 했고, 그것을 감내해야 하는 막중한 책임감이 따른다는 것을 알게 된 시기였어요.


어떤 작업이든 카메라의 셔터 앞에서, 상황은 종료되는 셈이다. 셔터를 누르는 것은 온전히 사진작가에게 맡긴 임무이므로 제대로 된 결과물을 담기 위해서는 지독한 노력의 과정을 거쳐야 했다. 지난 96년 본격적으로 스튜디오를 차리고 프로의 세계에서 사진 활동을 할 무렵, 광고 촬영 스케줄이 잡히면 그때부터 그의 머릿속엔 온통 촬영 생각뿐이다. 매 순간이었다. 친구들과 어울리는 자리에서도, 심지어 잠을 자는 꿈속에서도 촬영을 생각했다. 훌륭한 결과물을 만들어내려면 당연한 과정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사진만 놓고 본다면 그는 ‘완벽주의자’라는 단어를 넘어선다.

나와 일하겠다는 것은 곧 나와 일하고 싶다는 뜻이기 때문에, 난 최대한 보답해주고 싶었어요. ‘나를 선택한 것에 후회하지 않게 만들겠다.’라는 심정으로요. 그런데 그 보답이란 게 일단 사진이어야지, 친절하게 대해주는 그 외적인 부분이 아니잖아요. 내가 성격이 좋아서 혹은 관계자가 나랑 친해서 일을 얻었다는 건 굉장히 불행한 일이에요. 어차피 나보다 성격 좋은 사람은 나타나게 마련이고 그렇게 되면 난 또 버림받게 되니까요. 권영호만의 사진, 그것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하고 그것에 열광하도록 하는 게 나의 몫이라고 생각해요.

그에게 사진작가로서의 명성을 안겨준 20대 후반. 그 시기가 조금 이르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명성을 안겨준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한 번의 ‘찰칵’을 위해 수많은 생각을 거듭하고 흘린 땀방울이 존재했다. 어떤 이는 ‘현장에서 운 좋으면 잘 나오는 거고, 운에 맡기는 거지.’라고 생각한다. 이런 얘기에 그는 ‘20대에 운에 맡기는 삶, 가장 불행하지 않나요?’라고 반문한다. 20대에는 무한한 열정으로 철저하게 몰입해 나쁜 변수까지도 예방하는 완벽한 상황을 만드는 것, 달릴 수 있는 아름다운 숙명이 그의 20대에 온전히 녹아 있다.

정답없는 삶,모두가 내 몫이다

임은경은 물론 자신을 스타로 만들었던 SK Telecom TTL 광고로부터 이효리를 비롯해 권상우, 원빈 등의 사진집을 낳아 스타가 사랑하는 포토그래퍼로 활약하는 40대의 권영호. 그저 그 자리를 즐길 법도 한데, 그는 사진에서 벗어나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다고 말했다. 이유인즉슨 원하는 목적 없이 정처 없이 그저 생각이 머무르는 시점을 앵글에 담아내고 싶은 마음에서다.

상업적인 사진을 주로 찍다 보니 늘 컨셉트에 맞춰 찍어야 한다는 사명감이 있었어요. 초점이 잘
맞는 웰 메이드 사진 말이죠. 그런데 이제는 거기서 벗어나고 싶어요. 내가 살아온 시간과 삶이 그저 사진에 자연스럽게 흡수되었으면 해요. ‘왜 이런 사진을 찍었냐.’라고 묻는다면 ‘그냥 머릿속에 떠올라서 찍은 것뿐 이유는 없다.’라고 말할 수 있는 사진을요.


그는 모차르트를 예로 들었다. 모차르트한테 ‘왜 이런 음악을 만들었나요?’라고 묻는다면, 그 이유는 설명할 수 없는 그 ‘무언가’일 테니까. 영감을 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하나의 영감을 위해서 끊임없이 달려온 모차르트의 삶이 음악에 묻어났기 때문에 명곡이 되었다는 이야기다. ‘이제 사진을 찍어야지.’라고 생각하면 시작부터가 부자연스러워지는 법. 굳이 이론으로 설명되지 않지만 삶 자체만으로 뒷받침될 수 있는 작업에 매진하겠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현재 권영호는 모든 것에 가능성을 열어 놓고 작업할 수 있어 20년 넘게 해온 사진 속에서 새록새록 새로운 재미를 발견하고 있다.

사진을 처음 시작했을 때, 사진으로 어느 정도 인정받기 시작했을 때, 사진을 익숙하게 다루는 현재까지도 나는 단 한 번도 내가 예술가라고 생각하고 살아본 적이 없어요. 그저 남들이 찍지 못하는 새로운 요소를 발견해낼 수 있는 사진전문가, 완벽한 전문가가 되어야겠다는 다짐뿐이었죠.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과 ‘잘하는 것’은 분명히 다르다고 그는 강조한다. 그 때문에 뭐든지 다양하게 시도하고 부딪히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 안전한 길보다는 스스로 가고 싶은 길을 찾아가는 게 오히려 20대를 빛나게 해주는 방법이 아닐는지. 일반적인 이야기 같지만, 이것이 진리임을 그는 먼저 경험했고 묵묵히 걸어왔다.

어차피 정답은 없어요. 스스로 결정자일 뿐이에요. 기쁨도 내 몫, 후회도 내 몫, 슬픔도 내 몫. 20대라면 그들만이 향유할 수 있는 아름다운 희로애락(喜怒哀樂)을 느껴봐야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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