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궐지키는 女子




 
“덕수궁 돌담길을 연인과 함께 걸으면 헤어진다고
하잖아요. 그 이유가 뭔지 아세요?”

토요일 오후 1시. 덕수궁 돌담길에서 만난 최애선 양이 건넨 첫 인사다.

“헤어진다 안 헤어진다 싸우다가 헤어진데요!”

애선 양은 깔깔 소리내어 웃었다.

“식사 아직 안 하셨죠? 우리 뭐 먹으러 가요. 이 근처에 맛있는 집 있어요.”

하면서 그녀는 어느새 앞장서 걷고 있다. 그녀의 걸음걸이는 땅에 통통 튀듯이 리드미컬했고 그 리듬에 따라 어깨까지
오는 머리카락이 좌우로 찰랑거린다.

된장찌개와 순두부가 맛있다는 식당을 찾아 덕수궁 뒷길을 따라 걸으며, 배재공원과 시립 미술관 등을 지나쳤다.
그때마다 애선 양은 “이 건물은 근대식 건축 양식에 현대식 건축 양식을
접목시킨 거래요. 그래서 앞쪽은 이런 모양이죠”
라든지 “배재공원은
배재학당이 있던 터에 만들어 졌어요”
라든가 “이 공중전화
박스가 영화 동갑내기 과외하기에 나왔던 그 곳이래요”
라며 친절한 설명을 덧붙였다.

그녀는 광화문 일대의 역사적인 장소와 그 곳에 얽힌 이야기들에 대해 모르는 것이
없다. 그것은 그녀가 원래 건물과 역사에 관심이 많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보다 직접적인 이유는 그녀가 경복궁에서
‘우리 궁궐 지킴이’로 활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식 궁궐 지킴이로 활동하기 위해서는 2개월의 교육기간과 6개월의 수습기간을 거쳐야한다. 이 기간동안 지킴이들은
궁궐에 대한 다양한 지식과 광화문 일대의 역사적 장소와 사건들에 대해 공부하게 된다. 그녀는 지금 정식 궁궐
지킴이로, 격주 토요일마다 경복궁에 들른 관광객들을 안내하고 궁궐을 설명하는 임무를 맡고 있다.

“궁궐 지킴이라고 하면 사람들이 무슨 방범 순찰 도는 경비원이나 수문장
교대식에 참가하는 수문장인줄로 착각해요. 내가 경비원처럼 생겼나?”

궁궐 지킴이 유니폼인 개량한복으로 갈아입은 그녀는 배시시 웃으며 농담을 던졌다. 하얀 모시저고리를 입은 모습은
‘경비원처럼 생겼냐’는 그녀의 농담이 무색하게 선녀처럼 참하다.

하지만 이렇게 참한 이미지의 그녀에게는 의외의 이력이 있다.

“어렸을 땐 제가 사회에 적응을 못할 줄 알았어요. 원리원칙주의자였거든요.
그래서 어린 마음에 군인이 돼야겠다고 생각했죠.”

마음먹은 일은 밀어붙이고야 마는 그녀는 실제로 육사에 입학한 적이 있다. 고3이던 2000년도에 육사 시험을
보고 합격 통지서를 받았지만 훈련기간 중에 중도 하차했다. 자신이 막연히 동경했던 생활과 실제 군대 생활이
많이 달랐다고.

육사를 나온 후로 그녀는 같은 해 고려대학교 식품자원 경제학부에 특차로 합격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다른 사람들이 외면하는 농업에 관심을 기울이며 새로운 인생을 설계하고 있다.

“전공을 살려서 농업정책 분야에서 일하고 싶어요. 아무래도 전공이 그
쪽이다 보니 다른 사람들과는 농업을 대하는 마인드가 달라요. 저 아니면 안 된다는 확신도 있고요.”

월드컵 서울시 서포터즈, 국정감사 모니터링, 궁궐 지킴이, 시립 미술관 자원 봉사, 고려대학교 홍보도우미까지…
다양한 활동을 마다 않는 그녀는 1학년 때 학번대표를 지낼 정도로 학교 생활에도 열심이다. 고려대 특유의 자기소개
방식인 FM이 진짜 전공이란다. 어제도 고려대 응원제인 입실렌티에 가서 밤새 응원하고 왔다는 그녀는 익살스럽게
한마디 덧붙였다.

“오늘 인터뷰하려고 어제 밤에 목소리 안 쉬게 무지 노력했어요. 예쁘게
찍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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