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토대장정] 2002년 7월을 접으며

 

 
 

‘오늘 행진거리는 10Km입니다. 오대산 야영장에서 야영을 하려했으나, 시설차와 의료차의 이동에 약간의
    문제가 있어 야영장에서 9Km 떨어진 초등학교에 숙영지를 잡았습니다.
여러분들 좋으시죠??’ 아침 행진팀장 브리핑에서 장석이가 말한다.오대산 야영장 예약 상황도 여의치 않았고, 차량 이동에
약간의 문제가 생겨 급히 사전답사를 하고 숙영지를 바꿨다는게 오늘의 짧은 행진거리의 이유였다.
앗싸~ 내심 좋다.
10Km. 두시간 정도만 걸으면 당도하는 거리.
이제 10Km 정도는 정말 우스운 거리이다. 눈 감고도 걸을 수 있을 만큼의 단거리가 되어버린 것.
    처음으로 가져보는 단거리 행진에 약간의 이벤트를 가미해본다. 기획팀장 형철이가 급히 제시한
의견. ‘남녀 대항 걷기대회’.사실 원래부터가 다른 신체조건으로 인해, 행진중에 여자지기들이 남자 지기들의 도움을 많이
받는 것이 사실이다. 너무 힘들 때 베낭을 들어주고, 물 길러주고, 지쳐 숙영지에 돌아가면 텐트 쳐주고.. 물론 자연스레
이루어진 역할 분담에 여자 지기들도 많은 일을 하지만, 역시 힘쓰는 건 거의가 남자들의 몫이었다. 그러한 성 역할을 조금
바꿔보고자 제의한 의견. 대신 조건은 지는 사람이 점심, 저녁 밥 하고, 텐트 치고, 아무튼 오늘 하루 할 일을 모두
다 하기!! 규칙은 없다. 어떠한 방법으로든 먼저 도착하면 승리!! 단 한명의 낙오자도 없어야한다.여자 지기들, 남자
지기들 모두 대 찬성이다. 역할 바꾸기. 서로가 얼마나 힘든가를 알 수 있게. 서로가 서로를 이해할 수 있게. 힘든 행군에
아무래도 불리한 건 여자이다 보니, 남자들은 45분 늦게 출발하는 조건으로 행진&게임이 시작됐다.
   
여자팀 전원 사진촬영.
그리고 남자팀 전원 사진촬영. 그리고 출발~ !!
시작부터 대단하다.
연신 속보를 외치며 발걸음은 쉬지 않는다.
행진팀의 무전기로 실시간 연락을 취하며
서로의 상황도 살핀다.

 
    여자팀의 작전 – 전원 속보. 힘들 때 틈틈히 반보. 휴식지 없음.
남자팀의 작전 – 전원 구보. 뒤쫓아가다 여자팀이 보일 시에 전원 달리기.
  열심히 걸었다.
처음으로 여자들만의 대열에서 뭐가 그랬는지 꼭 이겨보겠다고 열심히 걸었다. 숙영지 500여m 남겨두고 행진팀의 말. ‘남자팀들이
1Km내로 뒤쫓아오고 있습니다.’ 그 말이 들리자마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뛰었다. 그 무거운 배낭을 메고, 힘껏 뛰었다.
기이한 풍경. 여자들만 있는 대장정 대열에서, 배낭을 메고 뛰기까지 하는 대장정팀.
후후, 그러나 ‘남자팀들이 1Km내로 뒤쫓아오고 있습니다’라는 말은 행진팀의 작전이었으며, 그 작전으로 인해 10Km를
1시간 40분만에 도착했다. 그리고 15분정도 뒤, 남자팀들이 도착. 정말 작전대로 열심히 열심히 뛰어서 도착. 온몸에
땀을 비오듯 흘린 남자팀들. 먼저 도착한 여자팀의 환호성 속에 한명한명 들어오다.

이긴 덕에 하루종일 푹 쉬었다.
텐트도 쳐주고, 밥도 해주고, 물도 길러다주고, 매일매일 해야하는 가끔씩 너무나 귀찮은 그 일을 오늘은 모두 남자팀에게
맡겼다. 누가 그 마음을 모르랴. 일부러 힘 내라고, 한번 즐겁게 웃어보자고, 그리고 자기들보다 더 힘들어하는 여자팀들
힘 내라고 질 것 뻔히 알면서 45분 늦게 출발하겠다고 자진한 남자팀의 그 마음을..


모처럼 상쾌했다. 아주 유쾌했다.
하지만 오대산 앞 9Km 떨어진 곳에 잡아놓았던 숙영지에 문제가 생겨, 그대로 오대산 야영장으로 행진을 이어야만
했다. 조금의 휴식 뒤에, 다시금 오대산으로 발걸음을 내딛었다.
지리산에 이어, 오늘은 오대산 등반이 있는 날이다. 지리산에 비하면 훨씬 더 쉬운 등반이 될 것이라는 사전
답사팀들의 말에 모두들 득의양양하다.
지리산도 전원 무사히 등반했기에, 오대산도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이리라.

오대산 야영장에서 하룻밤을 묵은 우리는,
새벽 05시 정각 기상. 점심거리로 주먹밥을 만들고 정상에서 먹을 간단한 간식거리를 준비한 뒤 산길에 올랐다.
오대산은 처음 등반하는지라 내심 기대했건만, 조금 실망이다. 등반코스에 차까지 올라올 수 있는 넓고 완만한
길. 하지만 오대산의 푸르름 만큼은 여전했다. 낮게 내리는 가랑비, 그리고 정상에 도착했을 때의 희뿌연 산안개.
안개비. 등반하는 거 같지 않게 시원했고, 또한 상쾌했다.

   
시원한 바람, 촉촉한 가랑비, 뜨거운 아스팔트가 아닌 모처럼 밟아보는 부드러운 흙. 오대산 정상에서
맛난 주먹밥 먹고, 간식거리를 단숨에 해치운 후, 산자락 한 귀퉁이에서 잠깐의 단잠을 청함. 그리고
배경 좋은 곳에서 단체 사진을 찍은 후 하산하다..

기분좋게 등반한 오대산을 뒤로하고 숙영지에 도착했다. 1949년에 설립해서 1994년 폐교되었다는
안내 표지판이 붙은 오늘의 숙영지는 최악이었다. 내 키만큼이나 높다랗게 자란 잡초들, 너무나 오랜도록
손대지 않아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은 푸세식 화장실. 수돗가도 없어 한참을 내려가 계곡물에서 물을
길어와야 했던 곳.

하지만 그런 환경에도 아랑곳 없이 맛난 저녁을 해먹고, 오늘의 이벤트 ‘Dance Festival’을 했다.

 
각 조별 대항.
각자 감추고 있었던 끼를 마음껏 발산하며 한껏 즐기다. 댄스 페스티벌 덕분에 신나게 즐기다가 잠자리에
들었다. ‘음악’과 ‘춤’으로 어우러진 밤이 끝나자 쉽게 잠자리에 들 수 없었던 우리는, 도란도란
모여 앉아 각자의 이야기 꾸러미를 풀어 놓았다. 10동의 텐트에서 새어나오는 그 소박하고 정다운
말소리들.. 그렇게 강원도 홍천에서의 밤이 깊어갔다.
    7월의 마지막 날.
너무 빨리 지나가 버린 시간을 실감하며 많이 아쉬워했다. 설렌 맘으로 7월만을 기다린 대장정 준비기간. 그렇게 7월 초에
대장정 길에 올랐고, 벌써 막바지에 접어든 오늘은 7월의 마지막 날이다. 오늘 아침 메뉴는 미역국이다. 삼일 연달아 지선이,
현진이, 미진이 생일이 이어졌고, 이미 지나가버린 한국이 생일도 챙겨주기 위해.
  ‘생일 축하해~ 정말 축하해~’ 행진 도중에 맞는 생일이라. 93명의 축하를 받는
그 기분. 강원도 낯선 곳에서 생일을 맞는 그 기분. 내심 부럽고, 정말로 축하해주었다. 고깔모자 쓰고, 기획팀에서
준비한 폭죽 크게 터트리고, 얼굴에 온통 생크림 묻히며 개구지고 별스러웠던 커다란 생일축하 시간이 오늘의 특별
이벤트였다.
낮에는 찜통 더위였다.
언제나 맞이하는 더위지만, 이제는 초연해져야겠다고 늘상 다짐해보는 더위였지만, 연속 삼일째 이어지는
이 찜통더위에 정말 쓰러지는 듯 했다.어렵게 도착한 숙영지, 양양의 한 야영장 계곡
물에서 정말 시원하게, 신나게 물놀이를 했다. 시원한 아이스크림으로도 부족해 보자마자 냅다 뛰어든 계곡물.
그 깨끗한 물 속에서 지독한 더위를 식히다. 맑은 계곡물은 항상 우리의 소소한 안식처가 되기에 충분했다.
차디차고 맑은, 그리고 끊임없이 졸졸 흐르는 그 계곡물처럼, 나의 인생도 그리고 우리네 인생도 그렇게 맑게
소소히 쉬지않고 긴 세월 속에서 흘렀으면 한다.

정말 시원하게 계곡물에서 휴식을 취하고, 짜파게티로 간단하게 요기를 한 뒤 다시 끓어오르는 아스팔트 위로 올라가다.
거기서 기다리고 있는건 국정홍보처에서 나온 취재팀. 우리의 취지를 세상에 알리고자 나온 팀이라 한다. 고맙습니다.
그리고 이쁘게 찍어주세요. 우리의 있는 모습, 숨김없이 보여주신다면 그걸로 충분합니다.

오후 행군도 무사히 마치고 도착한 숙영지.
60년 된 커다란 나무가 한눈에 들어오는 숙영지에서 갑자기 세찬 바람이 불다.

행진 도중 처음으로 맞는 세찬 바람에 조금은 불안해하면서 텐트를 쳤다.
비올 것에 대비해 배수구를 파고, 세찬 바람 덕에 다시한번 홀대를 잡고 망치질을 했건만, 스산한 밤공기와 함께
순간 모질게 불어닥친 바람에 우리조 텐트가 무너져버렸다. 찢어질 듯 텐트를 쳐대는 바람에 견디지 못하고 결국,
중앙 홀대 두 개가 완전히 구부러져버린 가운데 우리 텐트 천장이 완전히 날아가 버린 것.

덕분에 모두들 잠을 설쳤다. 스산한 바람과 묘한 불빛, 검은 하늘에 심히 잡생각에 빠져버린 날. 그래서 밤새
뒤척거리며 잠을 잘 수 없었던 깊은 밤이 지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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