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토대장정] 특별한 추억만들기

 

 
 
<새벽 5시 30분 기상. 오전 행진 18Km, 오후행진 15km. 무심히 내리쬐는 햇볕만 아니었다면, 비교적 무난한 행군이었다.
오늘 행진은 특별 이벤트로써 ‘마니또와 함께 걷기’.. ‘수호천사’라는 이름아래 힘들
때 남몰래 도와주었던 일주일간의 마니또를 공개하며, 함께 행군하고 함께 밥 먹고 취침하는 시간까지 꼬박 하루를
‘천사’와 함께한다.
  행진 11번째로 접어든 이제, 몸은 완전히 적응된 것 같다.
온몸을 훑고 지나가는 통증은 휴식지의 단잠으로 말끔히 씻을 수 있으며, 온통 상처투성이인 발은 이제 당연히,
그리고 마땅히 있어야 할 신체의 한 부분에 다름 없었다.
단 열흘 만에 그렇게 우리는 적응하고 또 적응했다..
열악한 상황인 만큼 더 힘들었으며, 힘든 만큼 그 의지는 더더욱 빛을 발하는 탓이리라.

오후 7시쯤 숙영지에 들어와, 늘 하던 대로 씻고 밥 먹고 나서 94명 모두가 함께 ‘소통’의 시간을 가졌다.
단체생활에서 으레 그렇듯, 꼬박 열흘이 지난 지금 약간씩 불협화음이 일고 있었다. 그래서 전체가 모인 가운데,
진지한 대화의 시간이 이어졌다. 자유 시간은 어떻게 활용되고 있는지, 사람과의 관계에서 특히 나이 많은 사람과
새내기들과의 관계, 행진 도중 아파서 어쩔 수

      없이 타야 하는 의료차에 대한 이야기, 손수 해먹는 하루
세끼 식사의 불만 등등.. 장시간의 대화 속에서 각자의 생각을 토로하며, 진지하게 개선방향을 모색해나갔다.
내일부턴 더더욱 힘을 얻으리라. 서로의 생각을 읽고, 각자의 행동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았으니…
 
무더운 날씨의 아스팔트 보다는 비가 오는 것이 좋다.
오늘은 새벽부터 무섭게 비가 내리더니 출발 직전에는 가랑비 정도이다.
비를 맞으면서, 나의 걸음과 박동에 달아오른 열기를 느끼며 오늘도 걷는다.
날씨가 우리에겐 정말 중요하다는 걸 새삼 느낀다. 비 덕분에 선선해진 날씨, 그냥 기분이 좋다. 조원들끼리
농담하고 웃으며, 모두가 흥겹기만 한 것이다.
오늘 오후 행진은 처음부터 끝까지 노래 잔치다. 낮게 쏟아지는 가랑비와 비교적 무난한 코스의 행진 덕에 밝게
웃으며 서로 손잡고 나아갈 수 있는 하루였다. 우리의 첫 휴식지인 김천시내에 당도해 생각지도 못했던 인공폭포를
발견했다. 우리의 걷는 길 거의 전부가 넓디 넓은 들판, 맑은 시냇물, 파란 하늘이 온통 그윽함을 자아내는
시골길이나 국도이다. 그렇게 끊임없이 널다랗게 펼쳐진 자연을 보다가 부닥친 김천 시내의 한 인공폭포.. 순간
낯설고 작위적인 느낌이 든다. 끊임없이 자연을 보자. 그리고 배우자.
그 드넓음과 푸르름을..

 

우울한 하루다. 지독한 무더위에 모두들 지쳐버리고 힘겹게 당도한 숙영지에서, 기주와 선미가 119에 실려갔다.
저녁을 먹다 급체해버린 선미와, 감기 기운이 있었지만 행진팀이라는 책임으로 하루 종일 선두에 서서 행진을 했던
기주가 감기몸살로 쓰러져 버린 것이다. 고열과 탈진으로 고통스러워하며 급히 응급차에 탄 기주를 보며, 또 눈물을
흘린다. 이제는 모두가 적응을 한 거 같다고 성급하게 안심해버렸었다. 그렇기에 더더욱 맘이 아픈 것이다. 주말이라
1, 2, 3기 분들이 바쁜 시간을 내어 들러주셨다. 각자의 한 말씀, 예상보다 잘 먹고 깨끗해 보인다는 말에
내심 부끄럽다. 젊은 시절, 사서 고생 한번 해보겠다고 온 곳에서, 너무 안일하게 지내고 있는 건 아닌지.
주어진 상황에서 체념 반, 포기 반으로 섣불리 적응해버리고 단지 버티어내고 있는 건 아닌지..
더더욱 많은 생각을 해봐야겠다. 눈 뜨면 밥 먹고 걷다가, 숙영지 들어가서 자는 한 달여 간의
같은 생활의 반복. 단순한 걷기 체험. 그건 아니라는 생각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어 본다.
선배 기수들의 진지한 얘기, 우리의 목적에 대한 진지한 반문.
밤늦게 다시 돌아온 기주와 선미에 대한 걱정과 안타까움 등 많은 감정에 뒤섞여 잠을 뒤척이며,
상주의 한 낯선 초등학교에서의 밤은 깊어만 간다.
   
이른 새벽부터 우리를 찾아주신 은실이 부모님 덕분에 맛난 삼계탕으로 아침식사를 해결했다. 오랜만에
맛본 고기 맛에 다들 흡족한 표정이다.오늘이 중복이고 일요일이란다.컴퓨터도, TV도, 핸드폰도,
신문도 없는 곳에서의 날짜는 무의미하다.
  단지 우리에겐 하루하루 지워나가는 것이 의미 있을 따름. 하루하루 늘어나는 행진거리와,
현재 당도해있는 지도상의 위치, 그리고 갈수록 줄어드는 행진 날짜만이 의미 있을 따름이다. 오랜만에 갖는 이벤트
시간. 각 조별 짝 피구로 몸을 푼 후, 방석퀴즈가 이어졌다. 그리고 자유시간. 오랜만에 맞는 여유로움에 한껏
기분이 좋다. 숙영지 근처 전화부스에 줄줄이 이어진 행렬. 보고픈 이에게 전화하며 울고 웃으며 각자의 회포를
푼다. 다들 가슴속에 많은 그리움을 감추고 있었던 듯 그렇게 전화부스의 행렬은 줄어들지 않는다. 그렇다. 낯선
체험, 낯선 환경. 그 속에서 익숙한 이를 찾는 것은 당연한 것을..
     
    장마라 한다. 호우주의보가 내렸다. 수요일 하루를 빼고 일주일 내내 비가 온단다.
걱정이다. 억수 같은 비는 우리를 지치고 피곤하게 하기에.. 예상대로 많은 비가 내렸고, 억수 같은 비 속에서
우리의 발걸음은 더디다. 비가 온 탓에 중식지에서 식사 해결을 하지 못한단다. 결국 중식을 포기한 채 그대로
강행을 하며 숙영지로 향했다.
다행히 ‘이벤트 집중 공략기간(^^)’이라 행진거리는 20Km밖에 안되었으며, 세시쯤 되어서 숙영지에 도착했다.
객기를 부리며, 우의도 입지 않은 체 비를 맞고 걸은 나는, 약간 싸한 기분과 함께 감기기운이 돈다. 하지만
마음만은 홀가분해진 느낌이었다. 이제까지의 욕심, 순간의 이기심, 잦은 눈물 등등 쏟아지는 비 속에서 많은
것들을 버렸다. 내 속의 많은 몹쓸 것들이 씻어지길 바라며, 쏟아지는 비 속을 한걸음 한 걸음 나아갔다.

늦은 점심을 먹고, 우리가 가장 바라던 ‘낮잠시간’이 주어졌다.
원래 이벤트로써 조별 장기자랑과 토너먼트 짝피구 준결승전이 기획되어 있었지만, 비 덕분에 ‘낮잠’시간이 주어진
것이다. 항상 잠이 부족했다. 쏟아지는 잠을 참으며 지독한 태양아래를 걸어야 했으며, 또한 빗 속을 걸어야
했다. 새벽 다섯시 반이면 어김없이 눈을 떠야했으며, 잠깐의 시간이라도 생기면 눈을 붙이기에 바쁜 우리였다.
그렇기에 우리에게 주어진 두 시간이라는 시간은, 차라리 꿈이었던 것이다. 맛난 잠을 자고 난 후, 늦은 저녁을
먹으며 서로 이야기하며, 보고픈 이에게 편지 쓰고 또한 함께하는 이에게 간단한 메모를 하며, 오늘도 하루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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