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토대장정] 기억 혹은 남기기

 

 
 
‘오늘은 하동을 거쳐 경상남도 거창으로 들어갑니다. 행진 거리는 대략
43Km 정도 됩니다. 이는 답사 시에 쉽게 숙영지를 잡지 못해행진 거리가 더 길어진 이유 때문입니다. 오늘
날씨가 무척이나 무덥다고 합니다. 모두들 힘내서 무사히 마칩시다’

보통 때와는 조금 무거워 보이는 행진팀장 장석이의 말이다.
아홉 번째 행진으로 접어든 오늘, 몹시 더운 날씨가 예상될 거라고 하니 적잖이 걱정이 되는 눈치다. 그래,
적응할 때도 되었건만 아직도 온몸을 훑고 지나가는 통증은 그치지를 않는다.
 
가장 강적은 ‘지독한 더위’.
빈혈에 탈진 증상까지 생기고, 벌겋게 타오른 살갗은 다
벗겨져버리기 때문이다.
조금의 걱정 속에 출발.
중식지까지의 20Km여 거리. 모두들 지쳤는지 묵묵히 걷기만 한다. 힘이 들어 말할 기운조차 없는 것이다.그리고
당도한 중식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그늘이 거의 없는 공터에다가 물도 없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뻗어버린,
너무나 열악한 환경의 중식지에서 일정한 휴식을 취한 뒤 다음 코스로 이동.또 묵묵히 걷는다. 다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지나간 시간에 대한 후회와, 앞으로의 가능성에 대한 타진. 나는 그렇게 내 삶의 흔적을 조금씩 더듬으며
내리쬐는 태양 아래에서 약간의 반성을 했다. 오후 행진은 우려했던 것보다는 괜찮았다. 모두들 이 악물고 걸어
낙오자는 없었으며, 119 구급대와 경찰의 보호를 받으며 우리 모두는 힘겹고 장렬하게 행진에 임했다. 모두들
지쳐갈 때쯤 천운으로 소나기가 내렸다. 태양을 가려준 낮은 구름과 한줄기 바람은 너무나 반가운 손님이었으며,
갑작스레 내린 소나기는 차라리 축제였다.
늦은 저녁 힘겹게 당도한 석식지.
거창의 한 교회. 어둑해질 무렵 서둘러 길을 가야 하는 장사꾼 마냥, 무엇이 그리 급했는지 빵과 우유로
대충 허기를 채우고 발걸음을 옮겼다. 이미 어두워져 버린 저녁, 거창 시골길의 밤공기는 온종일 지친 마음을
달래주기에 충분했다. 쏟아지는 별빛 속에서 이어진 94명의 발걸음.. 더욱더 의미가 컸으리라..
 
 
또다시 느껴지는 무더위. 오늘도 어제와 마찬가지이다. 30km가 넘는 거리.
무던히 쏟아지는 땀방울에 온몸을 적셔가며 열심히 걸었다. 이제는 걷는데 이골이 난 탓이리라. 모신문사에서 취재를 나왔다.
오늘 하루 종일 동행 취재를 한단다. 열심히 찍어대는 카메라. 문득 든 생각이다. 행진 중 열심히 돌아가는 카메라가 많이
있다. 국토지기 전체 캠코더, 디지털카메라, 일반 카메라.
 
그리고 각 조별 카메라. 이렇게 수십 대의 카메라가 열심히 우리의
순간을 포착한다. 끊임없이 돌아가는 그 기계를 보면서. 그 속에는 뭐가 있을까라는 생각.
필히 이 순간을 남기리라는 것이리라.
 
‘기억 혹은 남기기’.
매 순간을 고스란히 기억 속에 남기기란 두뇌 용량이 부족하다. 그렇기에 열심히 찍어댄다. 하지만 고작 그 기계가
무엇을 알 수 있으리라. 지금 우리의 이 끓어오르는 가슴을 고스란히 남길 수 있단 말인가. 많은 것을 기억하자.

지금의 내 의지, 내 태도, 지금 이 순간의 자연의 움직임, 옆 사람의 표정까지..
그리고 무던히 사랑하자. 행진 중 가장 많은 생각에 빠져버린 날.
남몰래 슬퍼해버린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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