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절특집 광저우를 찾아서ㅣ 매일 독립운동가를 만나는 강정애 역사연구가

당신은 광저우를 어떤 곳으로 알고 있나요? 한여름 광저우로 떠난 25기 소채리들이 그 물음에 답하려고 합니다. 숨은 역사 퍼즐 한 조각을 찾아서 말이죠.

기획1 광복절특집 광저우를 찾아서ㅣ매일 독립운동가를 만나는 강정애 역사연구가
기획2 광복절특집 광저우를 찾아서ㅣ뭐? 광저우에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있었다고?(발행 예정)
기획3 광복절특집 광저우를 찾아서ㅣ역사를 따라 간 소채리 광저우 여행기(발행 예정)

강정애 역사연구가에게 듣는
광저우 속 독립운동가들과의 남다른 교감


루쉰기념관에서 강정애 연사연구가

“새벽에 일어나 연구에 몰두하다 보면 아 그때 이런 사람도 있었구나 싶어요. 어느 날 그 사람이 ‘나 그런 사람이니까 좀 잘 써주시오.’ 하고 말을 속삭이는 것 같았어요. 그러면 한 사람 한 사람 교감이 되어서 나중엔 직경 1cm 정도의 흰머리가 검은 머리가 되어있더라고요. 그만큼 연구를 하면서 힘은 들었지만 저에겐 엔도르핀이 돌았어요. 빠져버린 역사를 메꾸는 역할을 한다 싶어 다 나라를 위한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다 끝나고 생각해보니, 결국엔 나를 위한 것이더군요.”

Q. 직접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광저우의 험난한 더위 속에서도 소채리들의 역사 길잡이가 되어 주셔서 어찌나 감사한지요!(감동) 먼저 국내에는 저서 <광저우 이야기>의 저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사실 저는 중국인 남편과 함께 광저우에서 20년 가까이 일하며 살았습니다. 2007년경 한국에 갔을 때 서점에 가보니 광저우를 소개한 책이 없더군요. 마침 2010년 광저우에서 아시안게임이 결정되었을 때 광저우를 소개하는 꼭 책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 무렵 저는2천 년 전 광저우에 존재한 남월국이라는 나라에 대해 굉장한 흥미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우리나라 고조선보다 약 90년 앞서 남월국이라는 나라가 광저우에 세워지고 광저우가 수도였습니다. 1983년 아파트 건설 중 발견된 남월국 제2대왕의 무덤을 현재는 서한남월왕박물관으로 조성했는데 광저우시정부는 아시안게임을 계기로 새로 발굴된 남월왕국 왕실 정원을 남월왕국박물관으로 조성한다는 발표를 했습니다.
2천 년 전 존재한 남월국 역사가 지금 현대적인 도시 광저우에서 그 맥박이 살아서 뛰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처음에는 그 책 이름을 ‘광저우 역사의 맥박’으로 할까 라는 생각도 했죠(웃음).

Q. 그런데 어쩌다 광저우 속 한국 근대사 연구에 빠지게 되셨나요? 역사 연구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2009년 <광저우 이야기>를 집필하면서 그 내용 중에 언급되는 동정전쟁 진망열사 기념비를 사진 찍으러 동정전쟁 희생자 묘원에 간 적이 있습니다. 우연히 기념비 뒤쪽에 있는 황푸군관학교 학생 묘원를 보게 되었고 그 묘원에 한국인 김근제, 한국인 안태 두 분의 묘비가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 당시만 해도 저는 우리나라 독립운동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있었기 때문에 왜 이분들의 묘비가 여기 있는지 궁금해서 관심을 가지고 사료를 찾아보니 황푸군관학교 제6기생 사망 동학 명단에 이분들의 이름이 있고 그 중 안태의 사망일은 1927년 11월 9일이었습니다.


황푸군관학교 학생 묘원에서 한국인 독립운동가의 묘비를 처음 발견한 순간, 강정애 역사연구가의 인생도 바뀌었다.

Q. 정말 운명처럼 근대 역사 연구를 시작하게 되셨군요. 이후 선생님의 행보는 어떠셨나요?

그래서 국가보훈처에 연락을 하니 안태와 김근제의 묘비가 여기에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더라고요. 80년 가까이 가족이나 후손들이 알지 못하는 이곳에 외로이 누워 계셨다는 것이 몹시 안타까웠습니다. ‘1927년 11월 광저우에 무슨 역사적인 사건이 있었나’에 관심을 가지고 조사해보니 1924년 쑨원이 광저우에 국공합작을 선포합니다. 중국이 국공합작으로 혁명을 한다는 사실에 고무된 우리나라 지사들은 대거 광저우로 집결했고요.
김산의 <아리랑>에 의하면 1925년부터 1927년 초까지 광저우에 한인들이 약 800명 집결해요. 이중 대부분 중국 관내, 만주, 러시아, 일본, 조선 등에서 활동하는 우리나라 독립운동계의 젊은 지도자들이었습니다. 중국 역사를 모르면 이들의 역사도 이해할 수 없는지라, 중국 역사와 함께 우리나라에 알려지지 않은 분들, 그들의 에피소드들까지 자료를 모으고 계속 연구했어요. 그러다 보니 어느새 모은 자료가 책으로 출판할 만큼의 분량이 되었더라고요.

Q. <광저우 이야기>에도 독립운동에 힘쓴 한국 청년들에 대한 이야기가 잠깐 실려 있는데요, 상하이, 미국과 달리 광저우 운동가들이 알려지기 힘들었던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국가건립 이념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광저우에 한국독립운동가들이 모이기 시작한 것은 1924년 중국 국민당과 공산당의 합작 이후입니다. 국공합작 이후 임시정부 계열 뿐만 아니라 사회주의 계열의 지사들이 밀집하여 1925년부터 1927년 봄까지 약 800명이 모였다가 1927년 4월 국공합작이 결렬됨으로써 흩어졌습니다.
그 중 특히 사회주의 계열에서 만주나 시베리아에서 독립운동을 하셨던 분들 중에 1945년 일제로부터 해방 후 북한으로 간 분들이 많고, 또 1950년 한국전쟁 시기 황푸군관학교에서 훈련을 받은 분들 중에 몇 분은 북쪽 군대에 종사하면서 남침에 앞장섰다는 이유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독립운동은 비밀리에 진행되었습니다. 한 사람이 몇 개씩 가명을 가졌고 심지어 중산대학교 학생 중에는 형제임에도 한 사람 이름을 동시에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자신들의 이름이 노출될 경우, 고향에 남은 부모와 가족들이 당장 치러야 할 고통을 알기 때문에 가급적 이름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했죠. 그래서 더욱 알려질 수 없었을 겁니다.


격동적이었던 당대 중국 역사의 소용돌이 안에서 발견한 우리 독립운동가들의 이야기를 전하는 강정애 선생님

Q. 그 많고 깊은 역사를 혼자 발로 뛰며 연구하셨다니 존경스럽습니다. 사료 조사 등 연구 과정을 자세히 설명해주실 수 있을까요?

일단 광저우에서 독립운동을 하셨던 분이 대두되면 먼저 당시 어떤 역사가 진행되었는지를 먼저 인터넷과 책을 통해 확인합니다. 그 다음 우리나라 한국사 데이터베이스나 독립기념관 자료실에서 관련 자료를 확인하고 거기에 언급된 책들을 찾아보는데 시중에서 구할 수 없는 책이 대부분이어서 귀국하면 한번씩 국회도서관에 가서 책과 자료를 복사해 와서 연구했습니다.

Q. 10년이 넘게 역사 연구를 진행하며 힘들었던, 기억에 남는, 행복했던 또는 벅찼던 순간들이 분명 많은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 순간은 어떤 순간으로 기억되는지 그리고 지금까지 달려올 수 있는 마음가짐은 어떠셨나요?

힘들었던 일은, 사실 저의 전공은 중국현대문학인지라 우리나라 독립운동에 대해서는 문외한이어서 맨땅에 헤딩하듯 시작한 것이지요. 처음에는 우리 역사책에 언급이 안 된 분들이 광저우에서 어떻게 활동했다는 구체적인 내용을 찾았을 때 마치 진흙에서 금맥이라도 찾은 듯 신기하고 보람도 느꼈습니다.
이 사실을 저만 알 것이 아니라 책으로 출판해서 공유하자는 결심에서 집필을 시작했지요. 그러나 집필이라는 게 만만치 않았습니다. 시간과 체력 싸움인데 사실 낮에는 일을 해야했고, 시간이 없으니 주경야독을 했어요. 매일 밤 10시쯤 취침하면 늦어도 새벽 3, 4시면 눈이 떠지고, 다음 날은 일찍 자도 또 새벽에 잠이 깨어 출근할 때까지 공부했어요. 지금 돌아보면 저의 하루는 24시간이 아니라 적어도 27시간인 듯했습니다.
때로는 ‘비전공자가, 그것도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왜 사서 이런 고생을 하는가, 그만 집어 치우자’라는 생각도 많이 했지만 황푸군관학교 학생 묘원에 계신 두 분과, 그리고 광저우에 와서 중국전쟁의 총알받이가 될 수밖에 없었던 분들을 생각하면 도리어 송구스러운 생각이 들어서 10년간 연구를 지속할 수 있었습니다.

Q. 역사에 대한 변함없는 열정이 말씀 하나하나에서 느껴지는데요, 문득 선생님의 역사 연구에 있어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인지 궁금해집니다.

광둥 지역 뿐만 아니라 광시, 푸젠 지역에서 누가 언제 어디에서 어떻게 활동하셨는지를 연구했고 5000km나 되는 관련 지역을 모두 답사했습니다. 그리고 하이난에는 일제시대에 조국에서 강제 징용되어 탄광이나 시설 공사장에서 노역을 당하거나 위안부에 종사했던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이들은 국권이 없어 갖은 학대를 받으며 노역을 하다 죽었고, 또 잊힌 하이난 산야 산뤄촌 천인갱에는 아직도 약 천여 명의 유해가 묻혀 있고 유해는 환국을 하지 못했습니다. 이렇게 발굴된 역사를 우리 차세대에 알리는 작업을 하고 싶습니다.


조선 청년 150명의 죽음을 기리는 커다란 기념비가 있는 광저우 기의열사능원. 이곳에서 강정애 선생님은 잊힌 우리 역사에 대한 안타까움을 전했다.

Q. 마지막으로 현재 대한민국을 살아가고, 이끌어 갈 20대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씀이 무엇인가요?

일제강점기 빼앗긴 나라를 찾아야 한다고 앞장선 자들은 당시 20대 젊은 지식인들이었습니다. 우리는 그들이 찾아 준 조국에 살고 있습니다. 지금의 우리 젊은이들이 조상들이 조국을 찾기 위해 머나먼 타국에서 어떻게 활동했는지 안다면 우리나라는 어떤 어려움도 극복할 수 있고 국권도 훨씬 강해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부디 젊은이들이 역사를 배워서 지사들이 어렵게 찾아 준 대한민국을 더 잘 살고 훌륭한 나라로 발전시켜 주시기를 바랍니다.


루쉰기념관에서 강정애 선생님과 함께 기념 촬영한 LG소셜챌린저 25기. 선생님의 열정을 본받아 역사를 제대로 아는 소채리가 되기로 다짐합니다.

“힘없는 조선을 누가 차지할 것인가. 우리나라는 지금 어느 한 곳도 무시할 수 없는 강국 속에서 목이 잡혀 있는 상황이에요. 그러면 누가 해결해야 할까? 과거에는 우리가 힘이 없어 당했다면 이제는 힘을 길러야죠. 이 힘을 기르는 것은 젊은이들이 역사를 바로 알고 내 중심의 역사가 아니라 객관적인 역사를 볼 줄 아는 안목을 기르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요. 그렇게 깜빡깜빡 흩어지는 맥을 살리는 거예요. 그러면 우리 역사는 살아있고 희망이 있다는 것이지요.”

LG Social Challenger 177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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