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Fromm | 슬며시 차오르는 위로의 달

사진 : 레이블 임

PART 1 _ 시작, 달이 차오른다

올해로 데뷔 6년 차. 인디 계에서 뼈가 굵은 가수이자 무궁무진한 창작력을 지닌 작곡&작사가. 그녀의 목소리는 첫사랑의 풋풋함이나 고백의 설렘을 노래하기엔 깊고 어둡다. 예쁘고 아기자기한 연못보다는 안개로 둘러싸인 호수와 어울리는 음색. 그 목소리로 불안과 멀어짐, 그리고 계절을 노래한다. 프롬이란 청춘으로부터 이야기의 실타래는 풀려갔다. 새벽을 위로하던 그 목소리처럼 나지막하게, 그리고 어느 순간 달이 차오르듯.

Q. 20대에 데뷔했다. 프롬의 20대가 궁금한데.

나의 청춘은 대부분 검은 페이지였다. 항상 갈급했고, 늘 목마르고, 앞이 안 보여서 괴로웠던.

Q. 대중의 반응에 대한 현실적인 벽을 느낀 건가.

아니. 오히려 데뷔하고 앨범을 내면서부터 삶은 즐거워졌다. 그 전이 오히려 힘들었다. 처음부터 무턱대고 앨범을 낼 순 없으니까. 나를 어떤 식으로 표현해야 하는지 고민하는 일련의 과정이 힘겨웠다. 내가 어떤 음악을 해야 할까? 가수라는 목표가 있지만, 어떤 예술가로 살아야 할까? 혼자 열심히 찾아 헤맸다.

Q. 당시 자주 들었던 음악이 있나.

나의 20대는 이상은 씨의 노래와 함께했다. 그 중에서도 대중적으로 알려진 ‘담다디’보다 ‘새’와 같은 슬픈 노래를 들었다.

Q. 연극영화학과에 진학했었다. 본래 연기자가 꿈이었나.

사실 어렸을 때도 꿈은 가수였다. 그런데도 연극영화학과에 간 이유는 워낙 연기하는 걸 좋아해서다. 연극은 종합예술이다. 연기뿐만 아니라 노래, 춤, 무대미술 등 각종 표현예술을 경험할 수 있어 매력적이었다. 또 그때 당장 할 수 있는 것 중 가장 원초적인 표현이 연극이기도 했다. 당장 친구들 몇 명만 모아서 이야기를 만들면 어떻게든 무대에 꾸릴 수 있었으니까.

Q. ‘표현’에 대한 갈증이 있던 것 같다.

맞다. 무언가를 표현하는 활동이 내게는 매우 자연스러웠다. 표현하는 행위 자체가 재미있으니, 언제나 열려있었다. 게다가 금전적인 이점도 있었다. 연극은 미술이나 실용음악, 클래식 음악과 같은 분야보다 비용이 훨씬 덜 들지 않나. 맨몸으로 할 수 있는 예술이 바로 연극이다.

Q. 앨범의 거의 모든 곡을 직접 쓰는 이유도 같은 궤인가.

내게 앨범은 그렇다. 내가 만든 곡들이 쌓이면 만들어지는 것. 특별한 이유를 찾기 어렵다. 그 과정이 너무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이라서.

Q. 어렸을 때부터 꾸준히 작곡 활동을 해온 것 같은데.

혼자서 멜로디 라인도 짜고, 가사도 쓰고 하면서 노래를 만들어왔다. 그 시간이 쌓여서 첫 앨범을 낼 수 있었던 거고.

Q. 첫 앨범 이 좋은 평을 받았다. 당시 인터뷰를 보면, 얼떨떨한 감이 있다.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내 노래에 대해 시장에서 어떤 반응을 보이고, 평단에서 어떤 평가를 할지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난 그저 그때까지 써둔 곡들을 내놓았을 뿐이었다. 나는 준비가 됐고 마침 앨범의 기회가 찾아왔다고 할까. 아마 나 말고 다른 가수들도 그렇지 않을까? 몇몇 야망가는 내가 한국 음악계를 다 뒤집어 놓으리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웃음)

PART 2 _ 고통, 다 마실 때까지 잠겨있기

첫 앨범이 세상에 나오기까지의 과정. 그 태생을 이야기하는데 ‘유난스러움’이 없다. 담담하고 겸손하다. 그렇다고 프롬이 욕심 없는 사람일까. 그녀는 작사 및 작곡뿐만 아니라 앨범의 구성과 컨셉, 커버 사진조차 직접 관여한다. <서로의 조각>은 편곡을 7번이나 바꾸었고, 다른 이에게서 영감을 받은 곡도 자신의 스타일로 재탄생시켰다. 욕심을 부리기 위해선 처절히 괴로워해야 한다. 새벽마다 가사 한 줄, 멜로디의 한 마디를 두고 치열하게 고민한다. 그렇게 창작의 진통을 견디다가 몸에 힘이 쭉 빠진 채로 달을 바라본다.

Q. 가사를 쓰는 과정이 궁금하다.

노트를 많이 활용한다. 특히 예전에는 일종의 줄거리를 써 놓거나 내가 겪은 일을 다듬어서 짧은 글을 적었다. 길거리를 가다가도 문득 떠오르는 생각과 느낌은 메모한다. 이렇게 내가 적은 것을 토대로 가사를 쓸 때가 있었다. 요즘에는 좀 다른 방식으로 영감을 풀어내는 것 같다.

Q. 어떤 방식인가?

한 가지 이미지나 심상에 꽂히면 그것을 구체화하는 방식이 좋다. 내가 어떤 분위기에 확 압도되면, 그 분위기에서 느껴졌던 이미지를 먼저 멜로디로 만든다. 그 후 멜로디 라인에 맞게 가사를 구체화한다. 한마디로, 떠오르는 느낌에 따라 멜로디를 먼저 만들고 그 위에 가사를 써 내려 가는 방식이다.

Q. 혹시 이번 앨범인 [REVE]에도 그런 식으로 작업한 곡이 있는지.

2번 트랙인 ‘Beautiful world’가 그렇다. 이 곡은 사실 ‘피터팬 콤플렉스’의 경인 언니가 만들어둔 곡이었다.
처음 곡을 대할 때는 경인 언니가 들려줬을 때 느꼈던 이미지가 강했다. 그런데 곡을 받아서 작업하다 보니, 다른 것이 느껴졌다. 마치 우주에 혼자 남겨져 있는 외로움이었다. 내가 새롭게 느낀 것을 토대로 작업하니, 멜로디의 거의 절반이 바뀌었다. 후렴도 다른 느낌으로 짰다. 그 과정에서 가사도 다시 탄생했다.

Q. 노래가 만들어지지 않을때의 프롬은?

막 괴로워한다. ‘작업이 안 된다!’라고 외치면서 널브러져 있기도 하고, 굴러다닐 때도 있다. 사람들한테 전화해서 힘들다고 징징거리기도 하고. 창작의 괴로움을 뿌리치려고 애쓰지 않는다. 그냥 그대로, 온몸으로 받아들인다.

Q. 그러다 보면 더 깊은 슬럼프에 빠지진 않을까.

힘들 때 신나고 밝은 노래를 듣고 날려버리는 사람이 많다. 난 그 반대다. 오히려 슬럼프를 겪을 정도로 우울한 날에는 ‘앨리엇 스미스’의 음악처럼 날 심연으로 끌어내리는 음악을 듣는다. 심연에서 허우적대고 있으면 우울함을 마주하고, 받아들이고, 결국에는 깨끗하게 마셔버리게 된다. 그러고 나면 어느 정도 괴로움이 해소됐다는 걸 느낀다. 그냥 한바탕 우울과 함께 뒹굴다가 털고 나오는 거다.

Q. ‘달’이 등장하는 가사가 많다. 프롬하면 달이 생각날 정도로.

해는 외롭지 않은 느낌이 든다. 사람에게 에너지를 주고, 또 그만큼 사랑을 받는다. 하지만 밤의 달은 다르다. 스스로 빛나지 못하고 태양의 빛을 반사해서 세상을 밝혀준다. 조용하고, 어둡고, 은근히 빛난다. 그런 달을 생각하면 중심보다는 주변에 있는, 외로운 존재라는 느낌이 든다. 그래서 가끔 새벽에 작업하다 말고 창문 밖의 달을 보면 나와 비슷하다는 생각을 한다. 나와 달을 자주 동일시하다 보니, 곡에서도 많이 등장하는 것 같다.

Q. 계절에 예민한 뮤지션이기도 한데.

계절이 변하면 우리를 감싸는 흐름이나 공기가 변한다. 바람의 온도나 세기부터 달라지니까. 그 변화를 예민하게 느끼는 편이다. 갑자기 무언가가 변한다는 것과 새롭게 적응해야 한다는 사실에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있다. 내가 현재에 좀 집착하는 스타일인가?(웃음)

Q. 가사에 ‘계절’과 관련한 메타포를 자주 활용하는 것도 그 때문인가.

가사에 ‘계절이 바뀌는 하늘’이라는 구절을 자주 쓴다. 계절이 변하는 하늘을 볼 때 센치해진다. 뭉클함이 몰려온다. 사실 2~3번 정도의 급격한 계절의 변화가 지나면, 1년이 지난다. 그리고 우린 그 1년 동안 계속 변한다. 그 사실 자체에 난, 슬픔을 느낀다. 공기와 하늘, 계절과 같은 모든 변화의 순간이 내겐 영감으로 다가온다.

PART 3 _ REVE, 넌지시 건네는 위로의 힘

프롬의 음악은 항상 급하게 찾아 듣게 된다. 주로 새벽이다. 갑작스럽게 슬픔이나 우울이 밀려올 때다. 숨이 막혀버릴 것만 같을 때 황급히 재생 버튼을 누른다. 그녀의 음악은 우울의 처방전이 되곤 한다. 우울을 노래하지만, 슬픔으로 내몰지 않는다. 겉으로 위로를 건네지 않아도 어느새 위로가 된다. 곡 저변에 스며든 그녀만의 언어 코드들. 특히 최근에 발매된 [REVE]에서 우울을 다루는 프롬만의 방식은 더욱 수면 위로 드러났다.

Q. [REVE]는 한창 우울에 젖어있을 때 작업한 것 같다. 앨범 커버부터 어두운 수족관에 잠긴 모습이다.

3집까지는 ‘우울’에 대한 견제가 있었다. 의도적으로 앨범에 1~2곡 정도 밝은 곡은 꼭 넣었다. 앨범이 슬픈 노래, 공상이 가득한 노래로만 채워지지 않게 노력한 거다. 듣는 사람의 입장에서 밝은 메시지를 가진 노래는 힘이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니까. 스스로도 너무 딥(deep)해지는 게 싫기도 했다. 그런데 이번 앨범인 [REVE]에서는 그 견제를 하지 않았다. 수록된 4곡 모두 밝은 노래가 아니다.

Q. 이유가 있나.

언젠가 한 번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사실 이번 앨범에 담긴 곡 모두 오래된 곡이다. 그 동안 너무 우울하다는 이유로 앨범에서 누락됐다. 오랫동안 서랍에 보관해둔 ‘우울이’의 먼지를 털어내고, 세상에 꺼낸 거다.(웃음)


‘우울이’가 알차게 모인 [REVE]의 앨범 커버. 어딘가에 잠겨 있는 듯한 느낌이다.


Q. 이번 앨범에 대해 말하자면.

[REVE]는 ‘멀어짐’을 이야기한다. 첫 트랙인 ‘Our night’는 상대와 내가 멀어지고 있다는 걸 체감했을 때의 이야기다. ‘우리가 지금, 서로의 마음속에 있나?’라는 생각이 들었을 때. 그래서 처음에 배치했다. ‘Beautiful world’는 가사가 조금 중의적이긴 하지만, ‘멀어짐’을 안타까워한다. ‘봄은 겨울이 꾸는 꿈’은 좀 더 직접적으로 이별 후라는 시점에서 이별하는 순간을 기억하는 노래다. 마지막 트랙인 ‘Fin’은 아예 이별을 통보하는 내용이다.

아주 조그맣고 외딴
그대의 꿈에선 찾을 수 없는 별
모든 걸 감춰둬 버린 별
빛은 모두 바래가고
아름답고도 선명하던 꿈에
파랗게 웃던 네 웃음도 it’s not here
– 01. ‘Our night’ 중

우리의 우주 사이에
가만히 빛나고 있는 뭔가
너와 내 우주 사이에
흩어진 새벽들을 모아볼 수 있다면
– 02. ‘Beautiful world’ 중

말이 없던 두 그림자
조그맣게 터져 나오던 너의 흐느낌은
말했었지 난 너에게 늘 꿈이고
언제나 넌 밤이었음을
– 03. ‘봄은 겨울이 꾸는 꿈’ 중

이 모든 걸 무너뜨려야 한다는 게
어디부터 버려야 할지
엄두가 안 나네
지금 이 순간까지도
놓지 못하는 건 네가 아냐
– 04. ‘Fin’ 중

Q. 프롬의 위로 방식은 조금 남다르다.

표현은 직접적일 수 있지만, 의미는 직접적이지 않다. 예를 들어, 내가 가사에도 쓴 표현 중 ‘밥을 먹었냐.’라고 물어보는 게 있다. 이건 직접적인 말이다. 하지만 그 말을 통해 하고 싶은 말은 진짜 밥을 먹었는지 묻는 것 이상이다. 이렇게 가사 속에 서브 텍스트를 숨기는 걸 좋아한다.

Q. 20대에게 들려주고 싶은 프롬의 음악은.

힘들어하는 청춘에게는 ‘별밤댄싱’. 잠깐 그 ‘천을 덮어씌워 놓고 춤을 추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한 곡을 더 들자면, ‘서로의 조각’. 20대 때 가장 깊숙하게 들어올 만한 사랑을 해봤으면 하는 마음에서다. 내 의미가 전부 이 사람에게 있다는 느낌을 꼭 느껴봤으면 좋겠다.

Q. 프롬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한마디 하면서 이만.

음악을 들어준다는 것 자체에 감사한 마음이다. 앞으로도 오래오래 두고 들을 수 있는 노래를 많이 만들 거다.

LG Social Challenger 1515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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