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드림챌린저/Epilogue] 나의 20대 초반 – My Early 20s Chronicle

수능

내 20대 초반을 하나의 키워드로 정의 내려보는 건 그렇게 어렵지 않다.
바로 「수능」, 조금 더 심화해서 표현하자면 「프로수험생」 정도? ㅋㅋㅋ
그만큼 나는 수능을 많이 치렀다.
어쩌다 보니 이과를 선택했고
어쩌다 보니 공대를 목표로
어쩌다 보니 생명공학과를 목표로
그렇게 수능을 많이 치렀다.
생명공학과를 가고 싶다는 마음이 생긴 이유도 학교에서 배우는 생명과학이 쉬워서 딱 그것 뿐이었다.
목표에 대한 명확한 기준 없이 그렇게 수능만 매년 봐왔다.
얼마 전 LG드림챌린저 7기 2차 캠프에 참가하기 전까지만 해도 스물네살이나 먹은 2016년의 나는 목표가 명확하지 않았다.
나의 20대 초반 연대기를 간략하게 정리하는 식으로 엘드챌에 대한 최종 후기를 남기고 싶다.

(이건 경어체로 안 쓸거야! 블로그에 존댓말 쓰는거 너무 오글거령 ㅠㅠㅠ)
2011년 고3 19살
직접찍은 노량진 육교

내가 페이스북을 시작한 것이 2010년 말.
그 때는 한국에 막 페이스북이 활성화 되던 시기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현역으로 수능 치기 전날인 11월 9일에 내 페이스북에 당당하고 장황하게 “One more year”을 외치고 다음날 수능을 쳤다.
지금 생각해보니 공부를 제대로 하지 않은 것에 대한 자위였던 것 같다.
당연히 평균 등급은 4.5로 처참했다.

2012년 재수 20살
재수실패

이때까지만 해도 나는 교회를 다녔었고 수험생임에도 일요일엔 무조건 교회를 나갔다.
주중엔 노량진 수능전문 단과학원을 다니며 “연세대 미만 잡!”을 가슴 속에 새기고 시작한 재수 초반의 기세는 서울대도 뚫을 것 같았지만 곧 이른바 ‘노량진뽕’에 취해 친목을 일삼으며 제대로 된 공부는 하지 않았다.
게다가 이성 간 애매한 삼각관계에 빠지게 됐으니 공부가 눈에 들어왔을리가… (그런데 왜 아직 모솔이죠?)
수능 결과는 현역 때보다 아주 약간 올랐다. (그래도 공부를 아예 안 하진 않았으니)
연말엔 18대 대통령 선거가 있었고 교회 내 정치적 파벌과 기타 등등 여러 이유로 교회와 단절했다.
모태신앙이었음에도 종교에 대한 단절은 소면 부러뜨리듯 쉬웠다.
지금껏 종교 생활에 바친 시간이 아까울 정도로.. 실망에 실망을 거듭했고 사람 사이 가식에 지쳤으며 그에 따라 종교 따위가 나에게 주는 안식은 더이상 없다고 느끼게 됐다.

2013년 삼수 21살

고민

너무 서러웠다.
재수 때 성적으로 원서를 넣은 학교들에 모두 불합격 해서 자동으로 입시생활 1년이 추가 됐기에..
(가)군에 넣은 안정지원을 맹신했던 것이 주요 패착이었다.
내 또래들은 5월의 그 좋은 날 봄바람 쐬며 대학생 분위기를 내고 성년의날이라고 서로를 축하해주고 있었다.
나는 다시 노량진 수산시장의 비린내를 맡으며 학원을 다녔고 이번에는 단과학원이 아닌 종합반에 등록했다.
6월 평가원 모의고사 때 평균2.6등급으로 내 인생 최고의 성적을 찍었지만 수능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어쨌든 너무나 대학을 가고 싶었고, 또 가야했기에 신중하게 원서 접수를 했고 그렇게 부산에 있는 국립대로부터 합격 통보를 받았다.(집은 서울인데…ㅋㅋ)

2014년 새내기 22살
부경대벚꽂열쇠

햇살이 내리쬐는 낮 시간에 수산 시장으로부터 나는 비린내를 맡지 않아도 됐으며
학원 건물 안에 14시간을 처박혀 있지 않아도 된다는 그 해방감!
삼수 끝에 누리는 대학 생활의 행복은 정말 말로 표현할 수가 없었다.
비록 점수에 맞춰 하향 지원한 학과였어도 숨쉬는 것 자체가 행복해서 휘파람이 입에서 떠나질 않았다.
하지만 내 생일(3월 20일, 여전히 학기 초)을 기점으로 마음 한 켠에 허전함이 한 구석 씩 차지하기 시작했고 이내 수능에 대한 미련으로 이어졌다.

이 시기에 서울과 부산을 왔다갔다 하면서 했던 대외활동이 더욱 그런 내 마음을 뒤흔든 것 같았다.
특히 여름방학 때 허리 수술로 장기간 입원했을 때는 이런 혼란스러움이 극에 달했다.
하루 종일 병원 침대에 누워서 할 수 있었던 건 하염없는 사색뿐이었으니까..
생각을 정리하고 싶어서 2학기엔 전공 수업 다 때려치고 인문과 철학 위주 교양수업으로 도배를 했고 그렇게 결론을 내렸다.

“수능을 다시 보자”

이제는 하고 싶은 것도 명확했다.
‘교사’가 되어 나와 같이 방황하는 학생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었다.
사실 LG드림챌린저는 이때 처음 학교 게시판 포스터를 통해서 알았는데 당시 6기 멘티들을 모집 중이었다.
하지만 수능을 다시 보겠다고 결심한 나에게 그것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고 나는 휴학 신청을 했다.

2015년 사수 23살

미생

그렇게 사범대를 목표로 4수.. 아니 나이상으로는 ‘5수’를 시작했다.
사범대만 목표로 했으면 잘 못하는 수학은 문과 수학으로 했어도 됐을텐데 여러 경우의 수를 고려해서 나는 다시 이과 수학을 공부했다. 하고 싶은 게 ‘교사’로 명확해졌다 말하고 다니긴 했지만 완벽한 건 아니었던 것 같다. 한 우물만 파도 힘든데 뭘 그리 경우의 수를 많이 고려했는지…
결과적으로는 목표로 했던 ①통학 가능한 ②국립 ③사범대에 원서를 쓸 수 있는 성적은 나오질 않았고 그냥 ①통학 가능한 다른 학교들에 원서를 넣었다. 지금(2016.01.25) 발표 기다리는 중이긴 한데 그냥 싹 다 상향지원해서 솔직히 기대하진 않고 있다.

2016년 현재 24살

그리고 LG드림챌린저…

엘드챌 포스터
수능에서 원하는 성적을 받지 못해 다시 방황하려던 찰나..
무엇에 이끌렸는지 LG드림챌린저 홈페이지에 접속하게 됐다.

“엄마 꿈 말고 네 꿈은 뭐니?”
“LG Dream Challenger 7기 멘티 모집”
“모집기간 2015년 11월 2일 ~ 11월 23일”

작년에 봤던 그 캠프 안내 포스터였다. 이번엔 7기.
나는 한동안 멍하니 화면에 나온 포스터를 바라보고 있었다.
마침 지원자격에도 해당됐다. 아직 세 번째 학기를 이수하지 않은 1학년..
나이가 많긴 하지만 그래도 1학년은 맞으니까 나는 지원 서류 작성을 시작했다.

Q. LG드림챌린저에 지원하게 된 계기, 얻고 싶은 것, 변화되었으면 하는 것을 자유롭게 이야기 해주세요.

A. “LG Dream Challenger는 작년 신입생 때 알게되었습니다. 즐거운 대학 생활을 하리라 다짐했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니 수능 성적에 대한 미련이 남았는지, 아니면 늦게 입학한 터라 또래 중에 동기가 없었기 때문이었는지 신입생인 저의 마음엔 어딘가 허전한 느낌이 계속 들었습니다. 교내 상담도 받아보고 인문학 특강들도 참여했고 심지어 2학기에는 전공 수업을 모두 배제하고 철학과 관련된 교양 수업을 많이 들었습니다만 여전히 해결되지 않는 갈증이 있어 결국 2학기를 마치고 휴학을 했습니다. 수능을 잘 보면 미련이 없어질까 하여 올 한 해 열심히 공부해 얼마 전 수능 시험을 또 치르기도 했습니다. 20대 초반을 입시에 매달린 저를 하나의 단어로 표현하자면 ‘후회’ 혹은 ‘미련’이라고 하고 싶습니다. LG Dream Challenger를 통해서 이러한 키워드가 ‘희망’, ‘확신’ 등으로 바뀌기를 소망합니다. 이곳엔 저에게 변화될 기회를 제공해 줄 알 수 없는 강력한 이끌림이 있습니다”(내가 작성했던 원문 그대로 복붙)

그렇게 서류전형에 합격했다.(링크)
영상을 보며 말미에 나오는 질문에 답해야하는 2차 미션도
“이게 뭐라고 이렇게 열심히 하나..”
하고 투덜대면서도 하나씩 정말 신중하게 작성했다.
작성하다보니 조금씩 나의 내면에 대해서 알게 됐으며
투덜거림은 곧 캠프에 대한 강한 기대감으로 바뀌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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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여러분의 꿈은 어떤 상태인가요? 저처럼 대학 입학 후에 명확한 꿈을 갖게 되었나요? 아니면 지금도 내 꿈은 무엇일까 고민하고 있나요? 꿈을 찾기 위해 대학 입학 후 한 일들은 무엇인가요? 저의 질문을 진지하게 고찰 후에 여러분의 “꿈”에 대한 이야기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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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오히려 저는 2014년 대학 입학 후에 꿈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또래보다 수험생활을 오래 했기에 동생들이 전부였던 동기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고 아무래도 점수에 맞춰 진학한 학과였으며 편소정 선배님처럼 집에서 나와 기숙사 생활을 하며 학교를 다녔던 것이 하고 싶은 일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특히 허리 수술로 인해 대학생으로서 처음 맞이하는 여름방학 동안의 장기간 입원은 그런 생각들을 정리하는데 충분한 시간적 여유를 줬던 것 같아요. 1차 서류전형에서도 썼던 내용이지만 입원 기간 중 했던 생각들을 정리하여 2학기에는 여러 교양수업도 들어봤고 인문학 특강에도 참여했습니다. 친구와 지인들에게 꿈에 대한 조언도 구해봤습니다. 2015년인 올해는 휴학을 하고 수능을 다시 치르기도 했네요. 20대 초반의 그 귀한 시간들을 너무나도 많이 입시에 쏟으며 느낀점은 저와 같은 고민을 하며 오랜 시간을 입시에 매달리는 학생들을 돕는 일을 해보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현재로선 교육 현장에서 학생들과 함께 호흡하는 자상한 선생님이 되는 것이 제 꿈과 가장 방향이 일치하는 길이라 여겨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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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입학 당시 대학에 와서 가장 기대했던 것은 무엇인가요? 대학생이 된 자신의 1년을 되돌아 보고 난 후, 점수를 준다면 몇 점일까요?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가장 후회되는 일과 자랑스러운 일은 무엇인가요? 앞으로의 대학생활에서 꼭 성취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요? 이러한 질문들을 진지하게 숙고 후에 여러분의 “대학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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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가장 기대했던 점은 대학수업이었습니다.
‘과연 고등학교의 수업과는 어떻게 다를까? 지금까지 내가 들었던 수업은 일방적으로 주입받는 입시 교육이었는데 과연 대학이란 곳은 어떻게 학문을 닦을까?’라는 것들이요. 물론 대외활동은 빼놓을 수 없는 대학 생활의 매력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부푼 기대감을 가지고 시작했던 대학 생활은 하지만 그 기대감이 오래가지 않았던 것 같아요. 적성, 지방 생활, 동기들과의 문제, 성격, 지나친 의욕, 건강 등 여러 곳에서 차츰차츰 삐걱대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만족도 점수를 매기자면 C+ 정도의 점수를 주고 싶어요. 가장 자랑스러웠던 것은 기숙사 생활비를 제외한 모든 학비를 장학금으로 충당했다는 것을 뽑겠습니다. 후회되는 일은 합창부 외에 다른 다양한 동아리 활동을 못해본 것과 그 때 당시 하고 있었던 대외활동에서 임원 역할을 맡았지만 리더십, 성격 등 부족한 것이 많아 결국 팀을 공중분해 시켰던 일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휴학 후 다시 치른 수능 결과에 따라 새로 입학해 새로운 1학년을 보내게 될텐데 이러한 경험들을 토대로 잘했던 것들은 더욱 발전시키고 부족했던 것들을 채워나가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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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여러분은 어떤 사람인가요? 강점은 무엇인가요? 그리고, 약점은 무엇인가요? 좋아하는 것은 무엇이고, 싫어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내가 생각하는 나는 어떤 사람인가요? 또, 다른 사람이 생각하는 나는 어떤 사람인가요? 가장 마음에 드는 나의 성격은 무엇인가요?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가치는 무엇이고, 어떤 일을 할 때 에너지가 솟는 것을 느끼나요? 여러분은… 자기 자신에 대해 잘 알고 있나요? 이 질문들을 진지하게 고찰해 보고, “나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 주세요.
—————————————————–
A. 제 강점과 약점은 매우 뚜렷합니다. 강점은 더 많은 것을 알고 싶고 경험해보고 싶은 열정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고 이를 통해 새로운 것들을 배우는 과정에서 무한히 솟구치는 에너지를 느끼게됩니다. 약간 학구파 스타일이라고 할 수도 있겠네요. 약점은 융통성이 없다는 것과 비슷하게 거절을 잘 하지 못한다는 점이라 생각합니다. 제가 저를 바라보는 이런 모습들이 과연 타인들에게도 그렇게 보일 지에 대해선 언젠가 지인이 SNS를 통해 저해 대해 남긴 글의 일부를 인용하고 싶습니다.
“이 친구는 말야, 수천 수만의 또래 애들이나 연배 애들과 달리 희생을 감수하고서라도 도전하고 스스로 발품팔아 명사 강연 찾아가면서라도 공부한단말이지.” 강점에 있어서는 저를 보는 타인과 저 자신의 시선이 어느 정도 일치하는 부분은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저에 대해 모르는 것이 많습니다. 외강내유의 기질을 갖고 있어서 가끔 인간 관계에 있어서 어떤 스탠스를 취해야할 지 애매한 적이 많습니다. 그럼에도 저에 대해 한 가지 확실히 알고 있는 것은 좋아하는 이성 앞에선 얼음이 된다는 것! 지금껏 참 많은 버스들을 놓쳤네요.

—————————————————–
Q. 아래의 형식으로 ‘나’에 대한 에세이를 써 주세요.- ‘나’는 []이다. 왜냐하면 [] 때문이다.지금의 ‘나’의 모습을 만든 데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사람(존재)은 []이다.
—————————————————–
A. (작성한 원문 못 찾았는데 기억나는대로 써보자면)
나는 ‘거울’입니다. 거울은 주로 현재 자신의 모습을 비추지만 얼마든지 과거 자신의 모습을 되돌아 볼 수 있고 미래 자신의 모습을 투영시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지금까지는 주로 ‘과거’에만 초점이 맞춰졌지만 엘드챌을 통해 앞으로 ‘미래’를 볼 수 있는 사람이 되길 소망합니다… 뭐 이런식으로 썼던 것 같다.

그리고 정말 감사하게도 2차 미션까지 통과해 엘드챌 7기 참가자로 최정 선정됐다 (링크)

최종 선발 안내 문자 받고..
2차 캠프로 배정되고..
카톡방이 만들어지고..
그리고 2016년 1월 11일부터 13일까지 LG드림챌린저 7기 2차 캠프에 참여하기까지…
하나하나 모든 과정들이 더이상 꿈 때문에 방황하지 말라고 속삭이는 듯했다.

아직도 귀에 들리는 듯한 구호 “드림~ 챌린저! 꿈을~ 책임져!”
얼핏 보면 꽃이 핀 것처럼 보이는 분홍색 단체 후드티
끊임 없이 공급되어 마치 사육당하는(?) 느낌마저 들었던 간식들..ㅎㅎ
일차별로 짜임새 있게 구성되어 하나도 버릴 것이 없었던 다양한 프로그램들

엘드챌 캠프 전 프롤로그
1일차 오전 후기 링크 1일차 오후 후기 링크
2일차 오전 후기 링크 2일차 오후 후기 링크
3일차 후기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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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차별 프로그램에 대한 후기들은 이미 포스팅했으니 링크로 대신한다.
캠프에 대한 전체적인 느낌은…
조금만 더 일찍 이런 활동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면.. 같은 후회가 들기도 했다.
하지만 이젠 더이상 후회 같은 건 하지 않기로 스스로 다짐했으니 이 느낌을 더 좋게 표현해보자면…

“그래도 지금이라도 이 활동을 알게 되고, 또 참여 하게 되어서 정말 다행이다”

그리고 들었던 다른 느낌들은…

“생각보다 많은 학생들이 일찍부터 자신의 미래에 대해서 고민하고 열정적인 모습이 나에게 큰 자극이 된다”
“2박3일이 아니라 3박4일.. 4박5일… 아예 일주일 동안 했으면 좋겠다”
“대외활동 이란 것이 몇 개월 이상 거창할 필요가 전혀 없구나”
“초록색 옷을 입은 주니어 멘토님들도 우리와 같은 시간을 보냈구나”
“나도 나중에 저기 주니어 멘토의 자리에 서고 싶다”
“정말 열정적으로 살고 싶다”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활동이 아닌 정말 나를 위한 활동들을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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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나의 20대 초반은 늘 ‘수능’이란 거대한 장애물과 함께였지만..
늦게나마 LG드림챌린저에 참여해 꿈 같았던 시간을 함께 나누게 되어 나에겐 정말 큰 영광이었다.

멋진 삶을 살고 계신 주니어 멘토 및 강사님들로부터,
열정적으로 꿈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멘티들로부터,
쉴 새 없이 동기부여가 됐던 2박3일..
최고의 2박3일이었다.

물론 캠프를 통해 완전한 확신이 섰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순 없다.
그렇지만 적어도 캠프 이후의 삶에서만큼은 이전처럼 ‘후회’와 ‘미련’이라는 단어는 쓰지 않을 것 같다.
정말로 ‘현재의 나를 위한’일을 하겠다는 하나의 확실한 이정표는 세운 느낌이다.

멘토님이 주신캘리그라피

사실 엘드챌은 캠프 기간보다 그 이후의 시간들이 더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넌지시 던져주고 있어서
캠프는 끝났지만 ‘끝나지 않았다’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나는 이렇게 말할거다.
엘드챌은 사실 2박3일 캠프가 아니다.
364박 365일 캠프다.
그리고 여전히 진행중이다.
라고..
.
.

3일차 프로그램 후기 마지막 부분에 썼던 말을 다시 쓰고 싶다.

“1년 뒤가 아닌 단 몇 주 뒤에 다시 서로 만나게 되더라도.. 그 때는 지금보다 조금씩은 더 발전한 모습으로 모두들 다시 만나게 되길 소망합니다. LG드림챌린저 7기 2차 캠프에서 만난 모든 인연들 수고하셨습니다. 꿈을 찾기 위해 발버둥 치는 그대들의 모습에 많은 감동을 받았어요. 덕분에 저 또한 크게 자극받고 가는 것 같네요. 몇 년, 몇 십년이 지나면 이 자리에서 만난 모든 사람을 다 기억하진못할 겁니다. 비록 그렇다 할 지라도 우리가 이곳에서 배웠던, 들었던, 보았던, 그리고 느꼈던 모든 것들은 절대로 가슴 한 켠에서 지워지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단체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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