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상미 | 덜 아프기 위해 난 꿈을 꾼다

꿈과 현실 사이를 갈팡질팡. 빛나는 청춘을 정의하는 또 다른 문장이다. 스무 살을 거쳐 견뎌낸 인생 선배 나상미 작가가 스무 살의 꿈과 현실 사이에 섰다. “쉴 틈 없이 꿈을 꾸니, 덜 아파요.” 그녀가 치아를 드러내며 웃었다.

LG드림챌린저 7기 캠프 중 <스무 살을 위한 드림 특강>의 속 이야기. 이 프로그램은 대체 뭔데? CLICK

셔츠와 니트 원피스를 레이어드한 나상미 작가의 옆 모습

나상미 작가가 엘드챌 캠프에 도착하자마자 환호성이 몰아쳤다.

“여러분~ 제가 오늘 어디서 온 줄 아나요? 바로 철원인데요. 철원에서 서울까지 오는 길이 고됐는데, 여러분 얼굴 보니 힘이 팍! 샘솟네요!”

LG드림챌린저 캠프의 유니폼을 입은 학생들이 팔을 올리고 댄스를 하며 나상미 작가를 환영하고 있다
“빰~빰빰~ 빰~빠빰! 나~상미!” 정체불명의 댄스와 함께 환영의 인사를 거창하게.

“여러분은 꿈이 있나요? 지금 없다면, 어릴 적에는 있었죠? 뭐였나요?

강연을 시작하자마자 던져진 질문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심지어 ‘손을 들고 발표해 보라’는 그녀의 주문에 강연장은 웅성웅성했다. ‘꿈 찾자고 온 건데, 지금이라도 손을 들어야 하나?’ 진지하게 고민하던 차, 나상미 작가가 말했다.

“이게 우리 사회의 현실이에요. 꿈에 대한 질문을 받았을 때, 막상 입 밖으로 꺼내기란 쉽지 않죠. 꿈꾸기 전에 ‘실제로 이루어질 수 있느냐’를 먼저 고민하게 되는 현실이잖아요. 하지만 이것은 여러분 잘못이 아니에요. 사회가 그렇게 만든 거죠.”

나상미 작가가 프레젠테이션 자료 앞에서 대학교 1학년생을 향해 마이크를 들고 강의를 하고 있다
나상미 작가는 우리가 꿈을 잃어가는 현실에 대한 이유부터 파헤치기 시작했다.

한 아이의 엄마로서 사회의 부조리 때문에 꿈을 잃어가는 아이의 현실을 통감한다는 나상미 작가. 안타까운 사회 현실의 사례는 그리 멀리 있지 않았다. 그녀의 아이가 받아온 가정통신문 한 장에서부터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아이가 받아온 학교의 가정 기초 조사 통신문에 ‘아이의 꿈’을 적는 란과 함께 ‘부모가 바라는 아이의 꿈’을 적는 란이 있었어요. 내 아이가 훌륭한 사람이 되길 바라는 것은 어느 부모나 마찬가지겠지만 ‘이건 좀 아니지 않나’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부모가 바라는 아이의 꿈을 적을 필요가 있나요? 그래서 전 ‘아이가 바라는 꿈’이라고 적었어요. 그게 당연하다 생각했고요.”

아이가 바라는 꿈이 곧 부모의 꿈이어야 한다는 그녀의 신념이 그리 보편적인 것은 아니다. 다음날 아이의 담임선생님에게 전화가 한 통 걸려왔고, 담임선생님은 ‘아이가 바라는 꿈’이라고 적은 이유를 물었다. 나상미 작가는 평소 생각하던 바와 같이, “아이가 하고 싶은 것을 밀어주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넉넉지 못한 형편에서 혼자 모든 것을 헤쳐나가야 했던 그녀의 경험이 있었기에 더욱 절절한 신념이었다.

강당에 모여 책상에 앉은 대학교 1학년생이 강당에 오른 나상미 작가의 강연을 듣는 모습
많은 강연을 다녔지만, 그녀가 스무 살 대학생 앞에 서는 건 처음이었다.

그녀의 어린 시절 꿈은 선생님이었다. 고등학교를 입학하면서 주변의 권유로 독일어를 공부하기 시작했는데, 수능보다 독일어에 매료되었다.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 했던가. 그녀는 곧 ‘전교에서 독일어를 가장 잘하는 아이’로 손꼽혔고, 크고 작은 경시대회에서도 여러 번 수상했다. 수상실적 덕분에, 다소 부족한 수능점수에도 불구하고 국립대 독일어과의 장학생으로 입학하는 영광을 안았다. 자연스레 그녀의 꿈은 독일어과 교수로 바뀌었다. 선생님이 되고 싶다던 어린 시절의 꿈이 한 단계 업그레이드! 구체화되었다.

“커진 꿈을 품고 공부하다 보니 기회는 저절로 생기더라고요. 학교에서 교환학생 1명을 뽑았는데, 제가 주인공이 되었죠. 집안 형편은 넉넉지 못했지만, 당시 어머니의 곗돈으로 가까스로 비행기 표를 구해 독일로 향했죠.”

독일의 대학에서 공부하며 독일 문화에 익숙해질 즈음, 돈이 똑 떨어졌다. 그야말로 빈털터리 신세. 하지만 한국으로 돌아가기엔 아직 일렀다. 캠퍼스 잔디밭에 누워있는 독일 학생의 ‘낭만’을 보니 더욱 떠나고 싶지 않았다.

“일단 귀국했어요. 당장 돈이 없으니까요.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랄까? 4학년 때부터는 꼭 독일에서 다시 공부하리라 마음먹어 독일의 베이비시터 자리도 알아보고, 정보를 수집했죠. 그렇게 수속까지 마치고 나자 제 맘은 온통 설렘으로 가득했어요. 그런데 하필이면 이때, 제 인생 최대 시련이 찾아온 거예요.”

환경미화원이었던 아버지가 갑작스러운 허리 부상으로 조기 퇴직을 했다. 나상미 작가는 이때를 살면서 가장 힘들었던 순간이라 회상한다. 가장의 퇴직으로 집안 가세가 한순간에 기울어 대학생인 두 명의 오빠는 물론 본인도 돈을 벌어야 하는 상황이 닥쳤다.

“당장 독일에 갈 비행기 표가 없으니 유학은 포기할 수밖에 없었어요. 그렇게 모든 것을 내려놓은 후 돈을 벌기로 했죠. 닥치는 대로 했어요. 한겨울에 마트 앞에서 발을 동동 구르며 냉동만두를 판매하기도 하고, 주유소, 편의점, 과외 등 무조건 돈 버는 일에만 매진했죠. 시간이 흘러 대학교 4학년이 되었고, 취업 준비를 시작했어요.”

꿈을 찾는 일에 대하여 강당 위에서 강의하는 나상미 작가의 모습
] 그녀는 믿는다. 꿈을 찾는 일, 우연이 때로는 필연을 만든다고.

그녀가 경찰공무원 시험을 준비한 것은 학교 게시판 한구석의 낡은 포스터 한 장 때문이었다. 그동안 관심 없던 포스터였는데, 그날따라 눈에 띄었다. 취업이 절박한 이유였을 터.

“경찰이 공무원이라는 사실도 그때 처음 알았어요. 별생각 없이 ‘경찰? 괜찮을 것 같은데? 월급도 꼬박꼬박 나오니 안정적일 것 같고.’ 경찰공무원 시험 준비를 시작하게 되었죠. 돈이 없어서 휴학도 못 하고 학원도 다닐 수 없어 독학으로 할 수밖에 없었어요. 무조건 읽고 외웠죠. 정말 하고 싶었던 직업은 따로 있기에 열심히 했지만, 재미는 없었죠.”

그러다가 한 경험이 그녀의 꿈을 확증했다. 독서실에서 공부를 끝내고 터벅터벅 집으로 걸어가는 길, 그녀의 옆을 두 대의 순찰차가 휙 지나갔다. 이 순간 묘하게도 그녀의 심장이 두근댔다. 아, 경찰이 나의 꿈이구나!

“제 꿈이 경찰관이라고 확인하는 순간부터 더욱 미친 듯이 공부했어요. 저녁도 걸러가면서요. 10개월 만에 경찰공무원 시험에 합격했어요. 이건 비밀인데요. 시력이 안 좋아서 시력 검사하기 전 1~2분간 시력 판을 순간적으로 외웠어요. 노력은 역시 배신하지 않아요.”

나상미 작가는 “처음에 가슴 떨리지 않는다고 꿈이 아닌 것은 아니다”라는 말과 함께 “어딘가에 여러분의 또 다른 꿈이 숨어있을 수 있으니, 늘 눈을 크게 뜨고 찾아보라”고 조언했다. 그녀처럼 말이다.

진지하게 꿈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나상미 작가의 상반신 컷
학창시절 글짓기를 싫어하고 독서를 멀리했던 그녀. “왜 못해?”란 생각으로 작가가 되었다.

경찰관으로서의 행복한 삶은 계속되었지만, 곧 권태감이 찾아왔다. 10년 이상 근무하고, 결혼 후 아이를 낳고 정신없이 살다 보니 직업에 대한 회의감이 들었다.

“보수적인 이 조직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그리 많지 않다는 생각에 회의감이 든 것 같아요. 그러던 중 우연히 TV에 나오는 김미경 강사의 특강을 보았는데요. 경찰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던 시절 경찰차를 봤던 것처럼 가슴이 떨리더군요. ‘나도 누군가에게 내 이야기를 전해줄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또 다른 꿈이 생긴 거예요.”

‘강사’라는 막연한 꿈을 이루려면 무엇부터 해야 할까? 그녀는 고민했다. 강의 동영상을 살펴보던 중 그녀는 보통 작가가 강의를 많이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곧 그녀는 다짐했다. 책을 쓰겠노라고. 그 결과 경찰공무원을 준비한 경험을 살려 쓴 <나는 대한민국 국가공무원이다>에 이어 직장생활 워킹맘의 이야기 <뻔뻔하게 요구하고 화끈하게 들이대라>, 이 시대 아버지들의 애환을 관찰한 <그대는 남자다>를 연이어 출판했다. 이 모든 과정이 1년 새에 이루어졌다.

“초인적인 힘이었어요. 많이 무리했죠. 그래도 행복했어요. 책을 집필하는 과정에서 강의도 많이 다녔죠. 꿈을 이룬 거예요. 강연은 주로 경찰공무원을 준비하는 분을 위한 것이었는데, 메일이나 전화, SNS로 연락이 많이 왔어요. 몇 권의 책만 썼을 뿐인데 엄청난 관심을 받는 것 같아 신기하고 기뻤죠.”

돈도 배경도 없이 혼자 모든 것을 이룬 그녀를 곱게 보지 않는 시선도 있었다. 젊은 나이에 크게 성공한 그녀에게 일종의 질투를 느낀 셈이다. “근무시간에 일 안 하고 책 쓴 거 아니냐?”라며 타박하는 이도 있었고, “저 책은 다 돈 주고 쓴 거다.”라며 명예훼손에 버금가는 막말도 들었다.

“내 실력으로, 노력으로 이룬 것들인데 억울했지만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어요. ‘어차피 모든 사람이 나를 좋아할 수는 없다. 모든 사람에게 잘 보일 필요는 없으니 나는 내 갈 길을 가련다.’ 생각했죠.”

나상미 작가가 엘드챌 캠프에 참가한 학생을 위해 본인의 책에 사인을 하고 있다
세 번째 꿈이었던 작가가 된 나상미 작가. 엘드챌 캠프는 갑자기 그녀의 팬 사인회로 전환!

무리한 스케줄과 마음고생 때문이었을까? 이미 파란만장하다고 해도 좋을 그녀의 인생에 또 한 번의 시련이 닥쳤다. 죽을 때까지 사람을 괴롭히는 병에 걸린 것. 그녀는 스트레스를 받으면 갑자기 쓰러지거나 새로운 질환이 생기기도 하고, 불시에 고통을 느껴야 했다. 평생 완치는 불가능한 지옥 같은 병이었다.

“제 뇌에는 1cm 크기의 종양이 있어요. 악성이거나 항암치료를 받아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뇌종양이기 때문에 치료는 불가능해요. 경찰의 꿈, 작가, 강연자의 꿈을 이뤘지만, 뇌종양을 얻었죠. 괜찮아요. 지금은 익숙해져서 약 먹고 관리만 잘 해주면 살 만해요.”

뇌종양의 충격이 다 가시기도 전, 그녀는 왼쪽 발목에 통증을 느끼기도 했다. 수술 후 8주간 통 깁스를 하고 이후 후유증과 재발 위험이 있으니 항상 조심해야 한다는 판정을 받았다.

“수술한 지 일주일 후부터 한 발로 운동을 시작했어요. 매일매일 1시간씩 하니 몸이 좋아지는 게 느껴지더라고요. 8주가 지나고 깁스를 풀었는데, 2주 후에나 걸을 수 있다고 했어요. 걷는 연습을 많이 해야 한다고 했는데, 운 좋게도 전 깁스 풀자마자 걸을 수 있었답니다. 운동 덕분인 것 같아요. 1년 정도는 지나야 뛸 수 있다고 했는데, 두 달 만에 뛰기도 하고요.”

이렇게 좋아질 만하면 시련이 닥쳤던 나상미 작가. 그런데도 유쾌하게 웃었다.

‘스무살 열정이여’, ‘너의 꿈을 찾아라’라는 플랜카드를 들고 대학교 1학년생과 함께 럭키 세븐 손짓을 하는 단체 컷
시련은 내 꿈을 위한 추진력. 하루하루 죽어가는 날이니, 하고 싶은 것은 마음껏 합시다!

여경이자 작가, 강연자라는 타이틀만으로도 그리 평범한 삶은 아니었을 그녀. 걸어 다니는 종합병원이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늘 병을 달고 살지만, 좌절해본 적은 거의 없었다. 오히려 그녀는 말했다. 더 아플 수 있고, 나빠질 수 있는 몸을 가진 사람이기에, 더 많은 꿈을 찾아야겠다고.

“지금 저의 새로운 꿈은 사진 작업을 위해 해외에 가는 것과 베트남 자원봉사를 하는 것이에요. 거창하지는 않지만 제가 해낼 수 있는 크고 작은 꿈을 하나씩 이뤄가고 싶어요. 그게 저의 최종 목표이자 인생 모토랍니다.”

꿈을 찾는 모든 이는 아프기 마련이다. 나상미 작가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녀가 꿈을 찾는 한 아픔은 늘 함께할 것이다. 그런데도 꿈을 포기할 수 없는 까닭은 아픔보다 설렘의 행복이 더 크기 때문이었다. 도전할 힘과 해낼 수 있다는 긍정적인 착각 속에서 그녀는 ‘38년을 잘 버텼다’고 표현했다. 살아온 것이 아니라 버텨온 것이라고. 계속해서 찾아오는 시련, 현재진행형인 시련 모두 본인의 꿈을 위한 추진력에 불과하다고 했다. 우린, 그걸 믿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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