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꿈을 되찾다.

2박 3일 간의 LG 드림챌린저 활동이 끝이 났다. 친구들에게 내 감정을 공유하고, 곧 입학할 신입생들에게 추천해주고자 후기를 작성한다.

친한 선배의 페이스북 태그 알림이 와서 봤더니 LG 드림챌린저의 참가자를 모집한다는 글이 있었다. LG라는 이름만 보고 바로 신청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제출 기한은 6시간 후. 마감일이 생일이었던 나는 친구들과의 약속을 취소하고 집에서 지원서를 작성하였다.


꿈에 대해 생각 해보는 캠프였다. 캠프의 내용을 보며 ‘내게 꿈이 있었던가?’하는 질문과 함께 나의 어렸을 때 생각이 났다. 나에게 ‘꿈’은 한 순간의 ‘꿈’일 뿐이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무한도전’을 보며 웃음뿐만이 아니라 사회적인 이슈, 또는 따뜻한 메시지를 담는 김태호 PD의 모습에 매료되었다. 그를 보며 나는 사회 문제를 지적하고, 사회에 도움을 주며 어려운 사람의 처지를 이해하는 ‘세상을 변화시키는 예능PD’를 꿈꾸게 되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까지 그 꿈은 유효했고, 꽤 구체적인 동기와 목표에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방송 영상 제작 동아리를 신설하여 학교 홍보영상을 제작하였고, 사회에 관심을 갖고자 신문 동아리를 신설하여 비평 활동을 하는 등 장래희망에 가까워지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그러나 ‘꿈’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고등학교 2학년이 되면서 꿈에 대한 흥미를 잃기 시작했다. 좋아하던 일들에 싫증이 났고 꿈에 대한 확신도 사라졌다. 무엇을 해야 할지 갈피가 잡히지 않았다. 1학년 때의 생활기록부에는 PD와 관련된 활동이 적혀있었기에, 2, 3학년 때의 활동도 일관성을 주려고 관련 활동만 했다. 대학 입시는 나의 진로에 대해 고민할 시간을 주지 않았고, PD는 그저 대학에게 보이기 위한 꿈이었다.

결국 일관성 있는 생활기록부 덕에 관련 학과에 진학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미 내 꿈은 방향을 잃었었고, 전공수업이 흥미롭게 들릴 리 없었다. ‘대학 수업은 전공 빼고 다 재미있다’라는 우스갯소리가 내 마음을 대변해주었었다.

꿈이 없었던 나에게 더 무서웠던 것은 그동안 내게 꿈이 없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 채 지내고 있다는 점이었다. 꿈에 대해 고민이 없었으니 목표가 생길 리 만무했다. 꿈을 찾진 못해도 나 자신과의 진솔한 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지원서를 작성했고, 생일선물이었는지 1차에서 통과할 수 있었다.

기말고사 준비 기간과 2차 미션은 맞물려 시작되었다. 평소 스스로에게 갖고 있던 생각들을 자기소개서에 담아내고, 마지막 기말 시험을 본 뒤 종강과 함께 최종 합격 통보를 받았다.


곧 5차 캠프 1조에 배정되었다는 안내를 받고, 걱정 반 설렘 반으로 캠프에 임하게 되었다.


아침 여섯시에 덜 깬 몸을 이끌었다. 영하 16도의 추위를 뚫고 캠프 장소로 향했다. 반갑게 맞아주시는 1조 박지현 멘토님과 인사를 하고, 책상 위의 빵을 먹으며 친구들을 기다렸다. 단체 카톡방에서 얘기하던 친구들이 어떤 친구들일까 궁금했다. 조금 어색하진 않을까..? 하는 걱정을 했지만, 하나,둘 도착한 친구들은 내게 반갑게 인사를 했다. 전까지의 걱정은 금세 녹아 내렸다.


친구들이 모두 모인 뒤, 캠프에 대한 소개와 규칙을 듣고 멘토와 함께 짧은 자기소개를 했다. 박지현 멘토님은 유쾌한 분이셨다. 커뮤니케이션미디어학 전공이어서 내 꿈에 대한 고민을 더 잘 이해하실 것 같았다.


조 이름과 구호를 만들었는데, 1조의 숫자를 살려서 ‘원(One)츄’라 짓고, 에이핑크의 ‘미스터 츄’ 노래에 맞춰 구호를 정했다. 그 후 LG 드림챌린저에 대한 간략한 오리엔테이션을 하고 다음 프로그램이 진행되었다.


쉬는 시간을 가진 뒤 첫 프로그램은 “Oh My Life” 보드게임이었다. 멘토님들이 딜러복장으로 게임을 진행해서 더 재밌었다. 질문 카드에 따라 내 인생의 과거, 현재, 미래를 얘기하는 게임이었는데, 특히 처음에 기차놀이를 하며 다른 조와도 인사를 한 게 인상 깊었다. 프로그램이 진행됨에 따라 시끌벅적한 분위기가 조금씩 가라앉았다. 조명이 꺼졌고, 책상 위의 촛불들이 켜졌다. 더 깊은 내용의 질문들 나누면서 속 얘기를 편하게 할 수 있었다. 여담이지만 나는 캠프 이틀 전에 친한 친구와 심하게 싸웠었다. 그 얘기도 스스럼없이 말할 정도의 분위기였다. 내 고민을 잘 들어주는 친구들과 멘토가 있었기에 좋았다. 게임에 승자와 패자는 없었다. 만난 지 세 시간쯤 지났을까, 우리는 서로의 깊은 이야기를 듣고 빠르게 친해질 수 있었다. 그 후 친구들과 함께 점심을 먹었는데 굉장히 맛있었던 기억이 난다 :)


점심식사 이 후 ‘라이프 매트릭스’ 작성을 했다. 잘하고 싶은 것, 해보고 싶은 것, 떠나고 싶은 곳은 막힘없이 술술 써내려갔다. 소중한 사람들을 적을 땐 조금 생각이 필요했다. 나의 인간관계에서 어디까지 친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지 고민을 하게 되었다. 주위 사람들은 활발한 내 성격에 친구가 많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적으려고 고민하다 보니 넓고 얕은 관계만 많을 뿐 깊은 친구는 몇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또 사랑하는 것들을 적을 때도 자신있게 적을 수 있는 것이 별로 없었고, 내가 뭘 좋아하는지 모른 채 살아간다는 생각에 회의감이 들었다. 마지막으로, 객관적인 나의 현재를 적는 곳은 바로 적을 수 있었는데, 부정적인 내용들로만 가득했다. 내가 나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으며 조금 충격을 받았다.


충격도 잠시, 바로 다음 프로그램인 ‘Dream Detox’프로그램을 시작했다. 조원들끼리 종이를 바꿔가며 얼굴의 일부분을 그리는 활동이었다. 처음에는 유치할 거라고 생각했지만 어느 순간 깔깔대며 참여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서로의 칭찬도 써줬는데, 친구들이 나에게 리액션도 잘해주고 먼저 마음을 열어줘서 고맙다고 했다. 의외의 칭찬이었지만 이전시간의 충격받은 마음을 달랠 수 있었다.

나의 핵심 가치를 적고 그것을 바탕으로 돌아다니며 친구들에게 나를 소개하기도 했다. 우선 내 핵심 가치는 완벽, 명예, 유쾌였다. 그 세 개의 가치를 조합시켜 나는 공주(공포의 주둥아리)라는 별명을 먼저 얘기하고 완벽주의자, 워커홀릭이라고 소개를 했다. 친구들이 나에게 재치 있다고 적어줘서 기분이 좋았다. 여담이지만 다른 조 친구들과의 활동이었기에 서먹한 감이 있어 선뜻 다가가기 쉽지 않았다. 그때마다 멘토들이 ‘귀인이에요!’라고 말하면서 짝을 찾아 주던 게 기억에 남는다.


저녁을 먹은 뒤에는 주니어 멘토들의 캠퍼스 스토리 강연이 있었다. 신두온, 라서현, 이현왕 세 분의 멘토께서 강연을 해 주셨는데 세 분 다 살아온 환경이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생인 나에겐 아무래도 신두온 멘토의 강연이 인상 깊었다. 초등학생 때부터 방송인의 꿈을 갖고 키워왔다는 것이 나와 비슷했다. 하지만 꿈을 접은 나와 달리 신두온 멘토는 하고 싶은 일을 계속 해 나갔고, 결국 그 위치에서 입지를 다질 수 있었다. 꿈에 대해 확신을 갖고 계속해서 노력하며 꿈에 다가가는 신두온 멘토가 정말 대단해보였다. 라서현 멘토는 ‘실패하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에 대해서 강연을 해 주셨는데, 멘토의 가정환경과 입시의 실패, 재수를 했지만 원했던 성적이 나오지 않았던 상황을 먼저 설명해주셨다. 그럼에도 좌절하지 않고 대학생활을 열정적으로 하셨다는 게 대단했다. 또 이현왕 멘토는 ‘밥, 약, 꿈’을 주제로 본인의 5수 경험을 말씀해주셨다. 나였으면 그렇게 못했을 것 같다. ‘꿈’ 하나로 힘든 생활을 다섯 번이나 반복했다는 게 대단했다.


강연이 끝난 후 짐을 끌고 숙소로 이동했다. 우리 방은 신두온 멘토와 1조, 2조의 남자 넷이서 함께 사용했는데, 얘기를 하다 보니 너무 좋은 친구들이었다. 씻고 나와 함께 드림 슬로건에 대해 생각해 보고, 위시트리에 걸 목표도 적었다. 나는 ‘자존감 높이기’와 ‘나를 좀 더 사랑하기’를 적었다. 라이프 매트릭스 시간에 내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기에 새로 세우게 된 목표였다.

그 후 나에게 쓰는 편지를 작성했다. 편지를 쓸 때 처음에는 무슨 말을 써야 할지 고민이 돼 펜만 굴리다가 한 자 한 자 적어가기 시작했다. 그때 되면 뭘 하고 있는지, 꿈은 갖고 있는지 물었다. 그리고 나 자신을 더 사랑해도 된다고, 자존감이 높아져있길 바란다고 마무리했다. 곧 잠자리에 들었다. 평소에 뒤척이며 늦게 잠이 들던 나도 바로 곯아떨어졌다.

전날 일찍 잠자리에 들었는데도 아침에 일어나기가 힘들었다. 그래도 제일 먼저 일어나서 친구들을 깨우고 아침을 먹으러 갔다. 아침도 역시 맛있었다! 전날 적었던 내 목표를 위시트리에 걸기도 했다.


주니어멘토 모닝 스피치로 둘째 날 아침을 열었다. 박지현 멘토의 강연이었는데, 흔치 않은 ‘한복 덕후’에 대한 소개가 너무나 신선했다. 또 그것을 꿈과 연결시키면서 꿈을 구체화 시켰다는 게 부러웠다. ‘주멘들의 소소한 한복 패션쇼’도 이어졌는데 다들 한복 핏이 너무 좋았다!


다음 활동은 ‘드림 팩토리’였다. 페이스북 LG 드림챌린저 페이지에서 앞 차수의 활동사진을 봤을 때 내가 가장 걱정했던 활동을 하는 시간이었다. ‘가짜 꿈, 진짜 꿈’ 작성. 나에게 있어 가짜 꿈은 수도 없이 많았지만 진짜 꿈을 답변할 수 없었기에 ‘내가 가서 진짜 꿈에 뭘 쓰지?’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다행히 나의 이야기를 적는 것이 아닌, 조원들과 얘기한 후 정의를 적는 것이었다. 가짜 꿈은 남에게 쉽게 말할 수 있는 것, 뜨겁게 불탔다가 쉽게 지는 불꽃같은 것이었다. 진짜 꿈은 생각만 해도 가슴 설레게 만드는 것, 오랫동안 끈기 있게 불타는 장작 같은 것이었다.


그 후 내 삶의 끝에서 듣고 싶은 말들을 생각했다. 배우자에게는 ‘사랑해요!’, 자녀들에게는 ‘아빠가 우리아빠인 게 자랑스러워요!’, 친구들에게는 ‘너 덕분에 너무 즐거웠어.’, 동료들에게는 ‘네가 있어서 너무 든든했어!’라는 말을 듣고 싶었다고 썼다. ‘벌써 삶의 끝을 생각하다니’ 하는 생각과 함께 기분이 묘했다. 또 그런 말을 듣기 위해선 일에서도 완벽하면서 가족에게도 열심히 노력하고 헌신해야겠다고 조금은 당연하고 교훈적인 말을 새삼 느끼게 되었다.


다음으론 사명선언문을 작성하였다. 나는 핵심 가치이었던 완벽과 유쾌를 중심으로 내가 작은 일에서도 지킬 수 있는 것을 썼다.

“나 문경태는 완벽함을 추구하는 창조를 하되, 따뜻함을 잃지 않고, 세상에 큰 빛을 비춘다(景泰-내 이름의 한자 뜻).”

어떤 일에서든 책임감을 갖고, 최선을 다 할 것이다. 그 속에서도 나를 위해서 앞으로 나아가는 것만이 아닌, 주위 사람들을 둘러볼 줄 아는 리더가 되고 싶었다. 다음 날 이 사명선언문은 액자에 사진과 함께 인쇄돼 나왔다. 그 예쁜 선언문을 나는 책상 한편에 올려놓고 매일 상기하는 중이다. 코치님의 사명선언문을 보면 내용도 길고, 구체적이었는데 나도 지금의 선언문을 바탕으로 더 구체적으로 조금씩 채워나가길 다짐했다.


그 후 명함 뒤에 들어갈 ‘드림 슬로건’ 작성을 했는데, 나는 무한도전의 노래 ‘그래, 우리 함께’ 중 ‘지금까지 걸어온 이 길을 의심하지는 마, 잘못 든 길이 때론 지도를 만들었잖아.’라는 가사를 적었다. 종종 내가 지금까지 해 온 것들이 제대로 한 것들인가에 대한 회의감이 있었다. 그러나 설령 그 일들이 잘못됐다고 해도 그 경험들이 새로운 방향을 제시해 줄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라고 스스로에게 말하고 싶었다.


이후 드림특강 시간에는 ‘스무 살을 위한 드림 특강’으로 22개월간 46개국을 돌아다니며 그림을 그리신 여행화가 김물길님의 강연을 들었다. 평범한 학생이었던 김물길 작가는 대학교 3학년 때 휴학을 하고 세계여행을 위한 돈을 모았다. 치밀하고, 계획적일 것이라는 예상과 다르게 매우 덜렁이었다고 말씀하셨다. 때문에 가족의 걱정이 심했지만 결국 허락을 받고 여행을 시작했다고 한다.
물론 순탄치만은 않았다고 한다. 그는 친구에게 사기를 당해 모든 것을 잃기도 하고, 하루도 못 버틸 것 같던 판자촌에서 며칠을 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그 모든 순간이 갚진 경험으로 남았다고 했다.


강연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말은 ‘안 되는 이유가 많아도 된다는 한 가지 이유만 있다면 하라’였다. 스무 살에 해외여행은 나의 버킷리스트 목록 중 하나였다. 그러나 시간적 여유나 혼자서 여행하기 외로울 것 같다는 이유로 계속 미루다 결국 제대로 된 여행을 하지 못했었다. 아쉬워하는 와중에도 선뜻 여행을 갈 용기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때문에 저 말이 더 와 닿았던 것 같다. 당연히 안 되는 이유가 되는 이유보다 많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1년 내내 그것을 핑계로 뒤에 숨었고, 아무것도 얻은 것이 없었다. 나는 강연을 들으며 캠프가 끝난 후 홀로 국내여행부터 떠나기로 결심했다. 드림챌린저가 바꾼 나의 삶의 태도 중에서 정말 마음에 드는 부분이었다.


그 후 전날 뵀던 신익태 코치님께서 ‘대학생활 큐레이션’ 강연을 해주셨다. 대외활동, 학생회, 교환학생 등 대학생이기에 할 수 있는 특권에 대해 보다 자세히 알 수 있었다. 그걸 바탕으로 ‘캠퍼스 커리어 로드맵’을 그렸다. 구체적인 시간을 고려하다 보니 막연하게만 생각하고 있던 교환학생이나 아르바이트, 워킹홀리데이를 지금부터 조금씩은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멍하니 있다간 4년 동안 누릴 것을 다 누리지 못하고 금세 지나가버릴 것 같았다.

둘째 날 저녁식사는 특별했다. 네 명이서 식당으로 이동하라고 해서 뭐지 싶었는데 테이블 세팅이 다 돼있었고, 메뉴는 버섯전골이었다. 모두 탄성을 지르며 맛있게 저녁식사를 했다.

다음 프로그램은 ‘꿈꾸는 사람 도서관’이었다. 휴게실에서 기다리던 우리는 강연장에 한 줄로 이동했는데, 평소와는 다르게 문이 닫혀있었다. 곧 클럽이 개장되었다는 말과 함께 문이 열렸다.

조명은 밝게 빛나고 있었고, 내가 좋아하는 노래들이 나와서 정말 미친 듯이 춤을 췄다. 후에 친구들이 “경태야, 너 클럽 한 번도 안 가본 거 맞아? 이렇게 잘 노는데?”라고 할 정도로. 멘토들이 레드벨벳의 ‘빨간 맛’과 싸이의 ‘뉴페이스’ 공연도 했는데 너무 재미있었고, 행복했다. 양중은 멘토님은 소문대로 노래를 너무 잘하셨다. 사실 멘티 장기자랑을 시켰을 때 나갈까 했지만 아는 사람이 별로 없었기에 그러지 못했다. 캠프에서 가장 아쉬웠던 순간 중 하나이다. 그때 눈 딱 감고 춤을 췄으면 더 많은 친구들과 친해질 수 있었을 텐데!

곧 조명이 켜지고, 넘치는 흥을 뒤로 한 채 ‘꿈꾸는 사람 도서관’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열한 명의 멘토 중 원하는 멘토의 도서관 네 곳을 갈 수 있었다. 가장 먼저 간 곳은 신두온 멘토의 도서관. 영상 제작 과정에 대해서 전반적으로 알려주셨다. 개인적으로 ‘어떻게 전문가가 많이 있는 분야인 영상 제작 분야에 뛰어들 생각을 했느냐’고 묻고 싶었지만 시간이 안 돼 질문을 못한 게 너무나도 아쉬웠다. 다음으론 우리 조 멘토, 박지현 멘토께 갔다. ‘휴학의 기술’ 강연이었는데 꿈과 목표가 확실하여 휴학 때의 계획이 뚜렷했고, 그것을 다 지켰다는 점이 놀라웠다. 솔직히 군휴학을 제외하고 휴학을 또 할진 모르겠다. 하지만 휴학을 한다면 그때 놀기만 하면서 보내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도움이 되는 것들을 찾고 실천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마지막엔 김지효 멘토께 갔다. ‘미친 듯이 공부하기’라는 주제였는데, 강연은 자존감에 관한 것이었다. 김지효 멘토께서 들어준 부정적인 예시가 딱 나였다. 끊임없이 남들과 비교하고, 약자에게 강하고, 강자에게 약해지는 사람. 너무나 나와 비슷해서 혼자 부끄러워졌다. 결국 남들과 비교하지 않고, 나 스스로의 기준을 정해서 맞추는 것이 중요한 것이었다.

꿈사도가 끝난 후 숙소에 들어갔다. 새벽 멘토링이 있었기에 최대한 빨리 씻고 새벽 멘토링을 준비했다.

둘째 날 마지막 프로그램은 엘드챌 프로그램 중 가장 좋았다고 생각하는 ‘새벽 멘토링’이었다. 나는 먼저 정세희 멘토께 갔다. 그러나 나의 전략적 실패로 세 시간 반을 대기하게 되었다. 물론 그 시간이 쓸모없던 것만은 아니다. 교류가 없었던 다른 조 친구들을 만나며 서로의 고민을 공유했다. 고민을 공유한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조금씩은 고민이 덜어지는 느낌이었다.

워커홀릭인 나는 작년엔 많은 대외활동을 했으나 올해는 과동아리 장 이외에는 예정된 활동이 없다. 나는 이것에 대해서 불안함이 있었고, 내 자신이 초라한 기분이었다. 그러나 멘토께서는 장이라는 역할이 무척 중요하고, 때문에 성장에 분명히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또한 일이 없을 때는 ‘쉬는 것도 일이다’라고 생각하라고 하셨다. 다음 활동을 위한 준비과정. 실제로 이 말은 내가 엘드챌에서 얻은 가장 값진 말이라고 생각한다. 덕분에 나는 마음의 부담감을 조금은 덜 수 있었다.

그 후 김지효 멘토께 갔다. 자존감에 대해 고민이 있다고 했더니 남과 비교를 하는 순간부터 사람은 부정적이 된다고 하셨다. 비교를 멈추고, 자신만의 기준점을 찾으라고 하셨다. 그것만 넘으면 충분히 잘 한 것이라고. 또 자신이 갖고 있는 장점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라고 하셨다.

새벽 멘토링은 진짜 ‘나’의 고민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조언을 들을 수 있는 뜻깊은 시간이었다. 멘토링은 새벽4시가 넘어서까지 진행되었지만, 잠을 못자도 좋으니 조금 더 멘토링을 받고 싶다고 생각했을 정도였다.

새벽 멘토링으로 조금밖에 자지 못했던 나와 룸메들은 모두 늦잠을 잤다. 늦게 일어났기에 5분 만에 조식을 먹고 허겁지겁 강연장으로 향했다. 눈코 뜰 새 없이 이틀이라는 시간이 지나갔다고, 벌써 마지막 날이니 아쉽다고 친구들과 말하며 첫 번째 시간을 기다렸다.

주니어 멘토의 모닝 스피치, 양중은 멘토의 강연이었다. 음악을 시작하게 된 계기와 함께 ‘너의 목소리가 보여’ 프로그램에 나갔던 영상을 보여주셨다. 어제에 이어서 노래도 불러주셨는데 ‘역시’라는 생각이 들었다. 노래와 스피치를 함께 들으면서 피곤함도 가시고 잠도 깼다. 아침을 경쾌한 마음으로 시작할 수 있었다.

‘Dream Mate’시간에는 미래의 내가 미래의 친구들과 대화를 하는 시간을 가졌다. 처음에는 조금 당혹스러웠다. 아직 뚜렷하게 되고 싶었던 것이 없었기에 뭘 적을지 몰랐기 때문이다. 곧 코치님께서 확실치 않아도 되니 가장 최근에 생각했던 꿈으로 해도 괜찮다고 하셨다. 망설임 없이 예능PD를 적었다. 전국에서 시청률 1위의 프로그램을 제작하고, 세계로 진출해 성공한 예능PD 문경태. 그 후 우리는 마치 미래에 온 것처럼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미래에서 나는 PD가 됐고, 미래에서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가 된 친구들과 명함을 나누며 대화를 나눴다. 처음에는 조금 오글거리기도 했지만 이내 진짜 그 역할이 된 듯 허세를 부리며 얘기를 나눴다. “아 설마 ‘무한도전’의 문PD님? 이번에 미국 진출하셨다면서요!” “아 사실 지금 미국에서도 시청률 3위… 아 아닙니다^^” 하면서.

그 내용을 바탕으로 나의 약력을 적었다. 나는 네이버 검색창 포맷에 ‘문경태’를 검색하는 형식으로 미래 문경태의 인물정보를 적어 내렸다. 이 보드를 바탕으로 친구들과 5분 동안 인터뷰를 진행했다. ‘내가 만약에 PD라면 어떻게 대답할까?’라고 생각하며 최대한 구체적으로 답했던 것 같다.

그 후 ‘꿈 보증서’를 작성하였다. 나는 ‘일러스트 하루 한 시간 독학’, ‘일주일에 영화 한 편 보고 감상문 쓰기’, ‘2018년 구체적인 여행 계획 세우기’였다. 홍보 분야에서 작업할 일이 많았는데 그때마다 일러스트에 대해 무지했던 나는 포토샵으로만 작업했다. 일러스트를 배우면 작품의 퀄리티가 훨씬 높아질 것 같아 첫 번째 계획을 세웠다. 다음으로 로맨스 코미디를 좋아하는 나였지만 다양한 분야의 영화도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와 더불어 영화를 보는 안목과 글쓰기 능력을 높이기 위해 영화 보고 감상문 쓰기를 적었다. 또 2017년 한 해 제대로 된 여행을 떠난 적이 없었기 때문에, 2018년에는 구체적인 계획을 미리 짜서 여행을 길게 다녀오고 싶다. 모두 작성한 뒤 조 친구들에게 응원을 들으며 증인 서약을 받았다.

이 프로그램을 하며 조금은 이상한 변화가 나타났다. 접었던 꿈인 예능PD에 다시 관심이 가기 시작했고, 꿈을 접게 된 이유에 대해 혼자 생각을 하게 되었다. 오래 생각해본 결과, 내가 PD라는 꿈에 흥미를 잃었던 이유는 ‘되기 어렵다’는 사실 때문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지레 겁먹고 포기를 한 것이다. 초등학생 때부터 고등학교 1학년까지, 나를 오랫동안 가슴 설레게 만들었던 꿈을 현실적인 이유로 접었다는 것이 안타까웠다. 아직 도전도 하지 않았기에 ‘다시 한 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이 생각에 박차를 가한 것이 바로 다음 프로그램, ‘드림 멘토링’이었다. 네 명의 친구들, 김지효 멘토, 사진작가님과 함께 홍석준 시사교양 PD를 만나러 목동 SBS로 떠났다.

처음 가보는 방송국은 모든게 신기했다. 로비에서 PD님을 기다리고 있는 동안 개그맨 김영철, 가수 장재인도 봤다. PD님이 오셨고, 우리는 게이트를 통과하여 회의실로 갔다. 방송국은 안 멋진 곳이 없었다! 구석진 곳마저 예쁘게 꾸며져 있었고, ‘이런 곳에서 일하고 싶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PD님과의 대화는 정말 값진 시간이었다. PD님은 군대에서 다큐멘터리 한 편을 보고 감명을 받아서 시사 다큐의 PD가 되겠다는 결심을 하셨다고 한다. PD님의 얘기를 듣고, 우선 나는 가장 궁금했던 ‘언론고시를 어떻게 통과했는지’를 여쭸다. 그는 안 해본 것이 없다고 답변했다. 스터디, 학원, 공모전, 인턴 등 끊임없이 노력했다고 하셨다. ‘역시 PD는 아무나 되는 게 아니구나’라고 새삼 느꼈다. PD님께서는 방송계 직업이 마냥 화려하게만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고. 그 화려함을 만끽할 시간조차 없는 경우도 있다고 하셨다. 하지만 그렇게 힘든 것만이 아니라, 일하는 곳곳에 소소한 재미들이 있다고 말씀하셨다. 또 ‘젊을수록 그물을 넓게 던져라’고 하셨다. ‘쌍끌이어선’을 예로 들면서 그물이 넓으면 넓을수록 대어를 낚는다고 하셨다. 1학년 한 해 동안 나름 그물을 넓게 던진 것 같아서 뿌듯했다.

PD님과의 대화 후 우리는 간단히 방송국 견학을 했다. 라디오 부스를 먼저 돌았는데, 최화정씨와 붐씨를 만났다. 역시나 신기했다. 다음 장소로는 프로그램을 송출하는 곳도 구경할 수 있었다. 그 후에 간 ‘그것이 알고 싶다’ 세트장과 뉴스 세트장에선 우린 어린 아이들처럼 사진을 찍었고, 재밌게 놀았다. 그렇게 엘리베이터에서 내려오던 순간 ‘그것이 알고 싶다’의 김상중씨를 만났고,우리는 인사를 했다. 그 분의 인자한 미소를 아직도 잊을 수 없다. 김상중씨도 느꼈으리라, 최대한 티를 내지 않으려 했지만 새어나오는 기쁨을.

우리만 기뻐했던 건 아닌 것 같다. 함께 간 김지효 멘토는 ‘그것이 알고 싶다’의 엄청난 팬이라고 한다. 세트장에 갔을 때, 김상중씨를 만났을 때 우리보다 더 기뻐했던 게 기억이 난다. 나와 김지효 멘토는 “경태야, 진짜 드림챌린저 최고 아니니?” “네! 아 진짜 신청 안했으면 후회할 뻔 했어요! 또 SBS가 아니라 다른 곳이었으면 어쩔 뻔 했어! 다른 애들은 이 감동을 모르겠지? 진짜 드림챌린저 최고다!”라고 말했다.

그때의 흥분을 생생히 담은 인스타 게시물도 있으니 보시길!
(https://www.instagram.com/p/BeaC6o9hz-o/?taken-by=moongom98)

“얘들아, 이런 게 뭐가 놀랍다고 그러니! 매일 있는 일같이 행동해야지!” 함께 방송국에 갔던 엘드챌 사진작가님께서 우리를 보고 웃으면서 말씀하셨다. “나중에 경태가 PD가 돼서 학생들한테 방송국 소개시켜줄 날이 오겠지? 학생들이 아이유를 보고 놀라워할 때 늘 있는 일이라고 말하며 웃어줘!” 그 날을 생각해보았다. 무슨 느낌일까! 설렘과 함께 잠시 행복해졌던 순간이었다.

생각해보니 그동안 꿈을 잃었던 게 아닌 것 같다. 현실의 높은 벽을 마주할 게 두려워 어쩔 수 없이 접어서 매너리즘에 빠졌던 것 같다. PD님과의 대화를 통해 쉽게 이룰 수 있는 일은 없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고, 때문에 도전하기도 전에 포기를 해선 안됐었다. ‘다시 한 번!’이라고 다짐했다. 다시 예전의 그 가슴 떨림을 느끼기로 했다.

근처 일식집에서 간단히 점심을 먹고 다시 강연장으로 돌아왔다. 소감을 나누기 전 막간을 이용하여 친구들과 명함을 교환하고, 사진을 찍었다. 마지막 프로그램만을 남겨놨다는 사실이 슬펐다. 방송국에서의 일화와 나의 느낀 점을 친구들 앞에서 발표했다. 그 후 첫날 쓴 ‘나에게 쓰는 편지’를 우체통에 넣었다.

수료식이 시작되었고, 1조였기에 제일 먼저 앞으로 나갔다. 한 명 한 명 이름이 불리며 수료증을 받았다.

(영상 : http://blog.naver.com/moongom61/221203984934 )

개인사정으로 수료식 이후에 뒷풀이를 가지 못해서 너무 아쉬웠다. 친구들 이야기를 들어보니, 뒷풀이 때 치킨을 먹으며 멘토님들과 친구들과 진솔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고 한다. 더 많은 친구들과 만날 수 있고, 또 우리 조 친구들과도 더욱 돈독해질 수 있었는데 그 기회를 놓쳐서 너무 아쉬웠다. 친구들과 “우리 꼭 연락하고, 꼭 다시 만나자”고 기약하고 헤어졌다.

박지현 멘토는 처음 친구들이 모였을 때 “얘들아, 우리 얼른 친해져야해! 앞 차수 친구들도 처음에 서먹서먹해 있다가 끝날 때 일찍 친해지지 못해서 아쉬웠다고 모두 그랬거든!”이라고 말했다. 그땐 ‘에이 그 정도까진 아니겠지! 3일 동안 처음 보는 애들끼리 친해지면 얼마나 친해지겠어?’라고 혼자 생각했었다. 근데 정말 그 말이 맞았다. 마지막 날이 되니 멘토, 멘티 할 것 없이 모두가 좋은 사람이었다는 걸 새삼 느끼게 되었다. 또 이 사람들이랑 헤어진다는 게 너무나 아쉬웠다. 첫 번째 날에 저렇게 생각했던 나 자신이 후회가 되었다. ‘다시 돌아갈 수만 있다면 열심히 나대서 (!) 빠르게 친해질 텐데’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이렇게 2박 3일 모든 캠프 일정이 끝났다. 자세한 느낀 점은 다음 편에 한 번에 정리하고자 한다.
또 자세한 사진들은 인스타그램에도 올렸으니 이 게시물도 많이 보시길!
(https://www.instagram.com/p/BeaZPCABAgb/?taken-by=moongom98)

마무리하기.

캠프에서의 활동과 각각의 느낀 점을 세부적으로 적었으니 이젠 전체적인 소감을 적고자 한다.


솔직히 처음에는 반신반의했었다. 꿈에 대해 고민해보고자 신청했던 캠프였지만 ‘꿈’이란 단어가 들어가는 프로그램 치고 ‘두루뭉술’ 하지 않은 것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내 꿈’이기에 타인은, 더군다나 이전에 나에 대해 전혀 몰랐던 사람은 어떤 것도 알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2박 3일 동안 얻을 수 있는 게 있을까?’ 부정적인 생각이 있었고, 갑자기 기말고사 기간에 열정적으로 자기소개서를 작성했던 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냥 혼자서 고민이나 해 보면 될 걸.’

그 생각은 캠프 초반에도 달라지진 않았다. 모든 것이 부정적으로만 느껴졌고, 처음엔 당연히 캠프 프로그램에 대한 참여도가 떨어졌다. 평소 친구들 사이에서 잘 깝쳐서 별명이 공포의 주둥아리, ‘공주’인 나였지만 조 구호를 짤 때 조용히 있을 수밖에 없었다. 프로그램 OT때 까지도.

그러나 잘 짜여진 프로그램 덕에 상당히 빠르게 마음을 열게 되었다. 보드게임을 하게 되면서였다. 물론 보드게임 초반에도 최대한 나를 감추려고 애쓰고 때문에 모든 질문에 단답식으로 대답했다. 하지만 불이 점점 꺼지면서 나도 모르게 내 성격이나 걱정거리에 대해 술술 말하게 되었다. 그때부터 부정적인 생각이 점점 사라지게 된 것 같았다. 아직도 어떻게 그렇게 쉽게 얘기를 했는지 이유는 모르겠다! ‘꿈에 대해서 고민할 시간도 중요하지만 좋은 사람을 얻어가는 것도 중요하지! 또 이런 애들과 고민을 나누다 보면 분명히 뭔가 얻어가는 게 있을 거야!’라는 생각을 하며 대화를 나눴다.

그때부터 이후 프로그램들에 대한 나의 태도가 바뀌게 되었다. 더 자세히 나의 상황을 적었고, 그것들을 친구들과 최대한 많이 공유하려 노력했다. 또 친구들의 얘기를 들어주며 자연스레 공감도 하게 됐다. 특히 우리 조 친구들 대부분은 1학년 때 학생회를 했었는데, 그 부분에서 힘들었던 경험들이 비슷해서 그 얘기를 나누며 더 친해질 수 있었던 것 같다.


나는 우물 안 개구리였다. 1학년 때 바쁘게 살았다고 자부했던 나였다. 친구들은 나에게 항상 “넌 왜 이렇게 바쁘게 사니? 너를 보면 내가 뭘 하고 있지 않은 것 같아서 불안해!”라고, 선배들은 “경태야, 너처럼 바쁘게 사는 새내기는 처음이야”라고 항상 말했다. 그런 얘기를 들을 때마다 “그러게… 난 왜 이렇게 살까. 언제쯤 노예생활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하며 우스갯소리로 대답했다. 하지만 나는 평소에 그 질문을 즐기고 살았다. 저런 질문은 대외활동에서 만난 형, 누나들도 했던 말이기에 나처럼 바쁘게 사는 것이 흔치 않은 일인 줄 알았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이 나는 정말 우물 안 개구리였다. 우선 멘티들의 스펙이 굉장했다. 학생회는 기본이고, 나보다 더 많은 대외활동을 한 친구들도 많았다. 멘티뿐만이 아니었다. 멘토들은 더 대단했다. 1학년 때 큰 공모전에서 다양하게 수상을 한 멘토도, 인턴을 한 멘토도 있었다. 또 스펙은 아니지만 다양한 경험을 한 사람들도 너무나 많았다. 그동안 바쁘게 살았다고 으스대던 내가 조금 부끄러워졌었다. 역시 사람은 겸손해야 하나보다!

예전 같았으면 남들보다 뒤쳐졌단 생각에 조급해 했을 것이다. 그러나 드림챌린저는 ‘나’의 페이스에 맞추는 법을 깨닫게 해 주었다. ‘비교 기준을 누구에게 잡느냐’가 상당히 중요한 것 같다. 언제 어디서든 나보다 뛰어난 사람은 분명히 존재한다. 그럴 때마다 남과 비교하다 보면 한없이 나 스스로가 작아지고 우울해 질 것이다. 물론 내가 지금껏 겪은 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럴 필요가 없었다. 이전의 나보다 발전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비교 기준을 ‘어제의 나’로 잡고 거기에 도달했냐 아니냐가 중요했다. 무한도전의 ‘그래, 우리 함께’ 노래 중 ‘혼자 걷는 이 길이 막막하겠지만 느리게 걷는 거야, 천천히 도착해도 돼.’라는 가사가 떠올랐다. 비록 남들보다 조금 늦어지고 때문에 막막하게 느껴지더라도 결국 나는 한 발짝 더 앞으로 나아갔고, 더 성숙해지면 된 거다. 부끄러워해야 할 점은 남들보다 더 바쁘게 살지 않은 내가 아니다. 그동안 바쁘게 산 게 유세나 된 듯 친구들에게 활동이 힘들다고 말하며 반응을 은근히 즐겼던, 별것도 아닌 것으로 으스대던 내 태도였다.


쉬는 것도 일하는 것이다. 둘째 날 새벽 멘토링 후기를 쓰면서 언급했던 말이다. 방학이 되고 항상 불안해 있었다. 다른 친구들은 모두 토플을 준비하고, 자격증 시험을 본다. 매일 아르바이트를 하며 학원을 다닌다. 그러나 총학생회 활동과 대외활동이 모두 끝난 나는 아무 것도 하는 것이 없었다. 가끔 밖으로 나가 친구를 만나거나 아니면 집에서 뒹굴며 TV를 보거나 노트북을 하는 것이 전부. 바쁘게 사는 것이 장점이라고 생각했던 나 자신이 한없이 초라하게만 느껴졌다.

방학이 아닐 땐 더 심했다. 학생회나 대외활동을 할 때도 여유가 생기면 그 시간을 어떻게 활용할지 몰랐다. 끝없이 일로 그 시간을 채우려고 했다. 물론 학점도 챙겨야 했기에 나 자신을 끊임없이 극한으로 몰았고, 그것이 내 성격인 줄 알았다.

‘방전’되었다. 무리하게 처리해야 할 일을 많이 계획했을 때 그동안 잘해왔던 일들도 뭐부터 시작해야 할지 혼동이 왔다. 또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감이 잡히질 않았다. 아무것도 하기 싫었고, 그렇게 한 시간을 멍하니 벽만 쳐다보고 있었다. 하지만 쉴 시간이 없었기에 어쩔 수 없이 꾸역꾸역 밤을 새 가며 마무리를 지었다. 나의 장점은 일을 즐긴다는 것인데, 억지로 하다 보니 당연히 일의 능률이 오를 리 없었고, 결과물 역시 너무나 실망스러웠다.

이러한 일을 겪었음에도 나는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를 몰랐다. ‘다음에 더 잘하면 되지’라고 생각하며 계속 또 다른 일을 계획하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의 나는 일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홀로 끝없이 뛰었던 것 같다.
그러나 이젠 그때의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안다. 여유를 즐기지 못했다. 아무것도 안하더라도 그것이 헛된 시간이 아니라는 걸 깨닫지 못했었다. 그간의 나는 잘 해왔고, 더 잘하기 위한 충전시간을 가졌어야 했다. 내가 진정 원하는 일, 중요한 일을 할 때 방전이 되지 않도록.

과 댄스동아리의 회장인 나는 신입생을 위한 새내기 새로 배움터의 공연 팀장을 맡게 되었다. 팀장으로서 맡은 일은 생각보다 많았다. 재학생 팀원 모집, 신입생 모집, 곡 선정, 곡 편집, 의상 선정, 큐시트 작성 등. 내가 좋아서 시작한 일이지만 힘들 때도 있다. 예전 같았으면 내가 힘들어도 빠르게 모든 것을 처리하고 또 다른 일을 찾았겠지만 이젠 그러면 안 된다는 것을 알았다. 내가 힘들면 아무리 하루에 일을 별로 하지 않았더라도 과감히 놓고 쉴 수 있게 되었다. 내가 일을 즐길 때 능률이 오르고 최상의 결과를 이끌어낸다는 것을 깨달았다. 지금은 쉴 때 죄책감, 불안함을 느끼지 않는다. 쉬는 것을 즐기게 되었다.


캠프를 통해 자신감을 되찾게 되었다. 어렸을 때 나는 자신감이 가득 찬 아이었다. 어느 누구와도 친해질 수 있었고, 나 스스로를 사랑할 줄 알았다. 항상 당당하게 행동했고, 덕분에 얼굴엔 웃음이 가득했다. 그러나 점점 커가면서 그 웃음을 잃게 되었다. 외모, 성적, 학벌 등 모든 부분에서 끊임없이 남들과 나를 비교하게 되었다.

세상엔 나보다 뛰어난 사람이 수도 없이 있기에 당연히 항상 초라해질 수밖에 없었다. 부정적인 생각은 끝없는 부정적인 생각을 낳았고, 그렇게 나는 한없이 우울해지고 있었다. 앞에선 항상 웃고 있었지만 속으론 그렇지 않았다. 그렇게 부정적인 생각을 하는 것마저 너무 싫었고, 나 자신을 너무 싫어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았다. 멘토들과의 대화를 통해 그동안의 나는 사람의 한 부분을 부러워했지 그 사람 전체를 부러워하진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 내가 부러워한 그 사람도 나에게 어떤 점을 부러워 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럴 만큼 나는 충분히 많은, 다양한 장점을 갖고 있는 사람이고, 남들 앞에서 위축될 필요가 전혀 없었다. 부족한 부분은, 남들보다 뛰어난 부분으로 덮으면 된다. 그렇게 나는 남들 앞에 조금씩 더 나 자신을 드러내야겠다고, 나 스스로를 조금 더 사랑해도 된다고 생각했다.

또, 덕분에 진심으로 위로할 줄 아는 사람이 되었다. 다른 사람이 나에게 고민을 얘기할 때 나는 ‘나보다 잘하면서 왜 그래?’라는 생각을 했다. 비교의 연장선이었다. 물론 티를 낼 순 없기에 최대한 공감해주는 척, 이해하는 척 했다. 정말 이기적이었다. 그러나 나 자신을 사랑하니 다른 사람의 얘기를 듣는 귀도 조금씩 트이기 시작했다. 우선 멘티들과도 진정한 위로를 하고, 또 덕분에 나의 고민에 대한 위로를 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내 친구들에게도 그들의 고민에 진심으로 공감해 줄 수 있게 되었다.

다시 꿈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캠프 초반엔 꿈에 대해 조금이라도 고민을 해보면 성공이라고 생각하고 참여했다. 하지만 끝날 때쯤 그것보다 더 나아가서 ‘예능PD의 꿈을 다시 한 번 펼쳐볼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꿈이 없었던 나에게 꿈을 필요로 하는 프로그램은 힘들었다. 예를 들면 미래의 약력 적기 같은. 그래서 가장 최근의 꿈이었던 예능PD로 참여했다. 그런 프로그램을 통해 PD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을 해보고, 홍석준 PD님을 만나며 꿈을 잃은 게 아니라 포기했던 것이라는 걸 깨달았다. PD가 되려면 무엇이 필요한지, 만약 된다면 내가 어떤 기분으로 일할지 생각도 하기 전에 막연히 되기 어렵다는 이유로 포기했던 것이라고. 그러나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PD에 대한 가슴 떨림을 다시 느끼게 되었고, 지금은 현재 그 꿈을 다시 목표로 꺼내놓게 되었다. 삶의 목표가 생긴 덕분인지 ‘꿈 보증서’에 적었던 ‘일주일에 영화 한 편 보고 감상문 쓰기’ 조항이 아주 잘 지켜지고 있다. 차곡차곡 노력을 쌓다 보면 아무리 되기 어려워도 그 문을 뚫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마지막으로, 처음에 소극적으로 임해 친구들과 많이 못 친해져서 아쉬웠다. 다음에도 이런 기회가 있으면 당당히 먼저 인사를 하고, 모든 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것이다.

또, 작은 꿈이 생겼다. 주니어멘토가 되는 것이다! 몇 년 후, 주니어멘토가 되어 멘티들에게 ‘나도 꿈을 잃었다가 고민을 통해 다시 찾을 수 있었다’고 말해주고 싶다. 또한 더 나아가서 드림멘토가 되어 멘티들에게 방송국을 소개시켜주고 싶다!

이렇게 모든 후기가 끝났다. 이 자리를 통해 함께 참여했던 멘티들, 나를 잘 이끌어주고 꿈을 다시 찾아준 주니어멘토들과 코치님들, 그리고 이 캠프를 추천해 준 학교 선배에게 감사드린다. 너무나 값진 시간이었다. 나도 곧 후배들에게 추천해 줄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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