럽젠톱텐 _ 겨울밤의 책 한 권

눈발 날리는 창가는 기말 고사를 치룬 하교길처럼 시립니다. 럽젠에서 추천하는 책과 음악, 영화 시리즈가 여러분의 가슴을 앗아 감성을 흔들어놓습니다. – 편집자 주


겨울이란 계절은 그렇다. 먹먹한 감정을 즐기게 하는 힘을 가졌다. 청명하고 시린 겨울 공기는 이상하게 울고 싶게 만든다. 그러나 너무 그 감정에 몰입해 흠뻑 감정에 젖어들기에는 부담스러운 계절이기도 하다. 추위에 다시 감정을 추스르기가 버겁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런 겨울에는 적당히 슬프고, 가슴 시리게 하지만 스스로 감정을 절제하게 하는 단편집이 좋다. 장편은 너무 몰입하게 되니까 말이다. 그런 점에서 한수영의 <그녀의 나무 핑궈리>는 쌀쌀한 날씨에 읽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다. 여덟 편으로 된 이 단편집은 한수영 특유의 섬세하고 가슴을 먹먹하게 만드는 문장이 주옥같은 책이다. 그녀의 글은 보석 같은 문장이 엮여 만들어진 소설계의 인다라망 같다. 글의 한 문장, 한 문장이 가슴에 와 박힌다. 때로는 눈물이 나고, 때론 마치 내 속을 훤히 들여다보는 듯한 글을 보고 있노라면, 요즘 날씨처럼 공허한 내 마음을 이야기하는 것만 같아 명치끝이 욱신거린다. 청명하고 싸늘한 겨울의 새벽을 즐기고 싶은 사람에게 권한다. 책을 읽고 나면 속이 맑아지는 서정의 개운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정념. 그것은 동시에, 알려져야 하고 또 알려지지 말아야 한다. 다시 말하면 내가 그것을 보이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것을 당신은 알아야만 한다. 내가 내 언어로는 감추는 것을 몸은 말해버린다.-
남자친구에게 차였다. 사랑의 ‘사’ 자만 들어도 울컥했다. 추리소설과 음모론, 히틀러 관련 책을 연신 읽어댔다. 그러니 책장에서 먼지만 쌓여가던 <사랑의 단상>을 발견한 것은 순전히 우연이다. 구입한 지 일 년이 지나서야 제대로 펼쳐 본 이 책은 롤랑 바르트가 ‘사랑’을 주제로 강연했던 것을 모아 놓은 단상집이다. 우리가 사랑할 때 겪는 복잡하고도 추상적인 감정을 예리하고 깔끔한 언어로 정리해 놓았다. 기다림과 부재, 황홀과 울림 등에 관한 그의 문장을 보고 있노라면 내면을 들킨 듯 소스라치게 된다. 비로소 정의할 수 없었던 복잡 달곰한 감정에 대해 조금은 객관적이고 냉철한 마음도 갖게 된다. ‘사랑’이라는 주제를 가지고도 이렇게 질척이지 않는, 깔끔한 글을 쓸 수 있다고 놀라게 되는 책. 짧은 카테고리로 이루어져 있어 읽기 쉽고 무엇보다 착착 감기는 표현이 눈을 즐겁게 한다. 사랑에 푹 빠져 행복한 이들보다는 솔로가 긴 밤을 헤아리며 쓸쓸하게 보낼 솔로에 권한다.


“여행 좋아하세요?” 이렇게 물으면 아마 ‘no’라고 대답할 이는 손에 꼽을 것이다. 우리는 누구나 일상으로부터의 일탈을 꿈꾼다. 다만, 현실이 가로막고 있을 뿐. 여행서적이 폭발적이지는 않지만, 꾸준히 팔리는 이유는 아마도 이런 연유에서 비롯된 것이리라. <자전거 여행>은 소설가 김훈이 자전거로 전국을 누비며 기록한 에세이다. 전국의 아름다운 절경들은 우리 시대 문장가의 한 사람으로 꼽히는 그를 거쳐 굽이굽이 펼쳐진다. 이런 절경은 어떤 황홀한 순간의 포착이 아닌, 오르막과 내리막을 오가는 여행의 과정을 적나라하게 드러냄으로써 독자에게 더 생동감 넘치게 다가온다. 문득 일상의 자질구레함을 참을 수 없는 날을 위해 바친다. 작가가 펼쳐놓은 단어와 문장 하나하나를 묵묵히 걷다 보면 어느새 작가가 그려놓은 그림 속에서 안온한 표정을 띤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테니까.


겨울 밤 편안한 복장으로 산책을 나가 찬 공기를 마시는 기분을 느끼게 하는 책 한 권이다. 진한 감정으로 눈물을 펑펑 쏟게 하는 작품보다는 잔잔하고 청량한 묘미가 있다. 일본에서 드라마, 영화로 제작되어 우리에게 너무 친숙한 책이지만, 국내에서는 영화의 유명세 탓에 정작 책을 읽어본 사람은 흔치 않다. 하지만, 원작은 영상과는 더욱더 정적이고 잔잔한 슬픔을 지닌 다른 멋을 지녔다. 책을 읽으면서 눈물을 펑펑 쏟을 일은 거의 없지만, 가슴 속에 잔잔한 감동은 계속된다. 또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넘겼을 때 느껴지는 마음속의 깊은 울림은 어떠한가. 뻔할 수 있는 불치병에 걸린 소녀와 소년의 사랑이야기 가운데 사랑에 대한 추억과 의미를 드라마틱하게 뽑아낸 것이 이 책의 저력이다.


책장을 넘기며 그림만 봐도 마음이 편안해지는 상뻬 아저씨의 책. 서른여덟 편의 짧은 이야기와 파스텔 톤의 간결한 삽화가 잘 어우러져 겨울에 심란해진 마음을 가라앉힌다. 친구들 사이의 우정, 미묘한 느낌과 사랑, 살아가면서 느끼게 될 다양한 감정들이 유머와 위트로 버무려져 쉽게 책장을 넘기는 멋이 있다. 고리타분한 철학을 말하는 것은 아니지만 쉽게 웃고 넘길 가벼운 이야기들도 아니다. 한번쯤 경험해봤을, 혹은 한번쯤 생각해볼 만한 이야기를 통해 보여준다. 한 편씩 읽을 때마다 기억 속 파편을 하나씩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이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 이야기는 짧디짧아 금방 끝나버리지만, 여운은 길게 남아 그 한 컷의 그림이 머릿속을 맴돌게 된다. 너무 갑자기 다가온 추위에 아직 어른으로 불리기엔 어리기 때문에 편히 마음 둘 곳 없는 대학생에게 세상을 바라보는 따뜻한 마음과 여유로움이 묻어나는 그의 글이 도움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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