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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여울의 관계학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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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시선에 비친 나, 그것은 과연 진짜 내 모습일까

타인의 시선, 그리고 다시 나를 보기까지

세 명의 사람이 상자를 쓰고 있으며, 상자에는 깨진 전구, 밝은 전구 등 여러 생각을 하는 듯한 그림이 그려져 있다.
순간을 사랑하라.
그러면 그 순간의 에너지가 모든 경계 너머로 퍼질 것이다.

- 코리타 켄트

프롤로그

돌이켜보면, 살아오면서 가장 후회되는 것은 ‘걱정하면서 보낸 시간’입니다. 그 걱정 중 대부분은 ‘다른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에 관한 것이었죠. 걱정은 일이 어떻게 되든지 상관없이 일단 우리의 정신 건강에 좋지 않습니다. 일이 어차피 잘 될 것이었는데 걱정만 하고 있었다면, 정말 불필요한 걱정을 한 것이고요. 일이 내 뜻대로 풀리지 않았을 때는 ‘걱정하면서 보낸 시간’이 더더욱 아깝고 안타깝게 여겨집니다. 어차피 내가 겪어야 할 고통이 미리부터 더 커져버린 셈이니까요. 일이 잘 되든 안 되든, 걱정하면서 보내는 시간은 우리의 영혼을 잔인하게 갉아먹습니다. 쓸데없는 잔걱정을 할 시간에, 조금이라도 나 자신을 행복하게 할 수 있는 작은 실천을 하는 것이 좋지요. 지금 이 순간에 나를 기쁘게 하는 일들을 조금씩 하다 보면, 누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따위에 신경 쓸 겨를이 없어집니다.
순간의 열정 속으로 자신을 온전히 던지는 것이 최고의 ‘타임 킬링’입니다. 하지만 그 사실을 알면서도, 우리는 끊임없이 걱정에 사로잡힙니다. 내가 말실수를 한 것은 아닐까. 저 사람이 내 작은 실수 때문에 나를 싫어하지는 않을까. 저 사람은 왜 내 앞에서 웃어주지 않는 것일까. 나의 첫인상이 나쁘지는 않았을까. 이런 걱정들에 사로잡혀 우리는 더 깊고 넓은 인간관계를 맺는 데 실패하곤 합니다. 우리는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쓰면서 살아가느라 정작 ‘내가 바라보는 나’의 진정한 모습을 찾아내지 못할 때도 많지요. 그런 의미에서 이번 시간에는 ‘타인의 시선 속에 갇힌 우리 자신의 모습’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져볼까 합니다.

한 여자가 바구니를 들고 지나가는데, 이를 주변 사람들 모두가 웃으며 보고 있다
언제나 어디서나 따라다니는 것, 타인의 시선에서 우리는 과연 자유로울 수 있을까. (이미지 출처 : 네이버 영화 <허삼관> 스틸컷)

럽젠 Q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라는 걱정 때문에 잠 못 이룰 때가 많습니다. 잠 자기 전에 낮에 내가 했던 어색한 농담이 생각나고, 중요한 상황에 능숙하게 대처하지 못했던 나 자신의 서툰 행동들이 생각나 뒤척거리곤 합니다. 주변 사람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면 ‘너무 다른 사람의 시선을 신경쓰지 말라’고 조언합니다. 하지만 그 사람들도 자세히 살펴보면 타인의 시선을 엄청나게 신경 쓰면서 살아가는 것 같습니다. 남들의 평판, 남들의 라이프스타일, 남들이 좋아하는 유행, 이런 것들에 신경 쓰지 않고 살아가는 방법이 있을까요?

저도 그런 적이 많답니다. 특히 20대까지는요.(^^) 지금도 가끔 다른 사람의 시선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아 잠 못 이루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지레짐작하고, 공상에 빠지고, 마침내 과대망상으로까지 치달아서, ‘그 사람의 진짜 행동’이 아니라 ‘내가 상상한 그 사람의 모습’에 따라 타인을 판단하는 실수를 범하기도 했지요. 이것을 심리학에서는 ‘투사projection’라고 하는데요. 나는 그 사람의 진짜 모습을 보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에 비친 그 사람의 모습’을 보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는 조금씩 서로를 향한 ‘투사’의 시선을 가지고 있지요. 그 사람의 완전한 진면목을 항상 투명하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에 비친 그 사람의 모습’만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똑같은 사람이라도 전혀 다른 평판을 받을 수 있는 것이지요. A의 눈에는 정말 유능하고 창조적인 사람으로 비치는데, B의 눈에는 보기만 해도 괜히 얄미운 눈엣가시 같은 사람으로 비칠 수 있습니다. A는 좀 더 공정하고 건강한 시선으로 그 사람을 바라보는 것이고, B는 그 사람에 대한 질투에 눈이 먼 나머지 그 사람에 대한 나쁜 소문을 내기도 합니다.

이렇듯 우리는 조금씩 ‘내 마음에 비친 타인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죠. 다른 사람도 당연히 나에게 그런 시선을 가지고 있죠. 문제는 ‘그 시선과 어떻게 대화할 것인가’입니다. 때로는 정성어린 해명이 필요할 때도 있고, 반드시 싸워서라도 내 억울함을 증명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어떤 순간에도 ‘내 마음에 비친 내 모습’을 잃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보는 나 자신’이 부정적이고, 소심하고, 부끄러운 모습뿐이라면, 남들에게 내가 좋은 모습으로 비칠 리가 없지요. 누군가가 나를 질투하고 있다는 것은 때로는 긍정적인 힘이 되기도 합니다. 나는 질투할 만한 가치가 있는 영혼의 빛을 간직한 사람이 되니까요. 누군가가 나를 비판하는 것도 때로는 힘이 될 때가 있습니다. 나는 그토록 타인의 지대한 관심을 받는 소중한 존재라는 의미이기도 하니까요. 타인의 시선은 반드시 전쟁터나 지옥처럼 무서운 것만은 아닙니다. 타인의 시선 속에서 우리는 ‘더 나은 나’를 만들어갈 수 있는 기회를 창조할 수도 있습니다. 타인의 시선에 비친 내 모습을 좀 더 차분하게 성찰함으로써 우리는 더 나은 나, 더 멋진 나, 더 많은 사람들과 좋은 인연을 맺을 수 있는 나 자신을 만들 수 있는 기회를 만납니다.

럽젠 Q 다른 사람의 시선을 신경 쓰는 것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어느 정도는 다른 사람의 시선을 의식해야 우리가 엉뚱한 옆길로 새지 않을 수 있지 않을까요. 타인의 시선이 우리 삶에 도움을 줄 때도 있을 것 같습니다. 만약 다른 사람의 시선이 전혀 없다면 이 세상은 전쟁터로 변해버릴지도 모르니까요. 다른 사람의 시선 속에서 오히려 긍정적인 측면을 발견할 수는 없을까요?

다른 사람이 나에게 기대를 하는 것이 좋은 역할을 할 수도 있죠. 지나친 기대는 금물이지만, 부모가 자녀를 향해 믿음직스러운 시선을 보내는 것, 친구가 또 다른 친구에게 우정 어린 시선을 보내는 것, 선생님이 학생에게 애정 어린 시선을 보내는 것은 모두 멋진 ‘피그말리온 효과’를 낼 수 있습니다. 피그말리온이 자신이 만든 조각상에 진짜 사랑에 빠진 나머지 조각상이 실제로 아름다운 여인으로 다시 태어난 것처럼, 타인에 대한 애정 어린 시선은 그 시선을 받는 대상을 좀 더 ‘나은 존재’로 만들어줍니다. 영화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에는 강박증 환자인 유달이 짝사랑에 빠진 후 그녀가 자신을 어떻게 생각할지 고민하다가 ‘당신을 위해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어졌다’고 고백하는 대목이 있지요. 정말 자기 자신밖에 모르던 철저한 에고이스트였던 주인공이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어떻게 바라볼까’를 생각하며, 더 나은 사람으로 변모하는 순간의 기적이 눈부시게 그려진 작품이죠. 이런 것이 바로 ‘타인의 시선’이 우리 삶을 더욱 아름답게 만들어주는 순간입니다.

영화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의 한 장면. 두 남녀가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있다.
‘당신을 위해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어요.’ 이보다 더 로맨틱한 고백이 있으랴. (이미지 출처 : 네이버 영화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스틸컷)

물론 다른 사람이 나를 좋게만 바라본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죠. 아무리 타인이 나를 믿음직스러운 시선으로 바라봐주어도, 내가 노력하지 않는다면, 나 자신에게 절실함이 없다면, 상황은 오히려 악화될 수가 있죠.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타인을 향한 진정한 믿음과 애정의 시선’은 그 시선의 주체뿐 아니라 대상까지 긍정적으로 변화시킵니다.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볼까’만 걱정하지 말고, 내가 다른 사람에게 그렇게 따스한 애정을 담은 시선을 보낼 수 있다면, 우리 삶은 더욱 풍요로워지지 않을까요.

럽젠 Q 아주 친한 사람이 아닌 이상 타인의 시선을 쓰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 타인의 시선이라는 것이 너무 다양한 분야, 너무 사소한 것에까지 연결되어 있다는 점이 문제입니다. 특히 회사에서는 어떤 옷을 입는지, 어떤 헤어스타일이나 메이크업을 하는지도 많이 신경 써야 하고요. ‘진심’이라는 것을 담을 겨를도 없이 일단 예의부터 차려야 하는 경우가 많죠. 하지만 또 너무 다른 사람의 의견만 추종하면 ‘예스맨/예스걸’ 소리를 듣기 십상이고, ‘줏대 없는 사람’ 소리를 들을 수도 있죠. 또 다른 사람의 시선을 너무 신경쓰지 않으면 ‘눈치 없는 사람’ 소리를 듣게 되고요. 타인의 시선을 신경쓰는 데 있어서 과연 ‘중용’이라는 것이 있을까요.

‘시각적인 부분’은 ‘타인의 시선’을 고려할 때 가장 신경쓰이는 부분이지요. 특히 우리나라 사람들은 외모에 대한 지나친 관심 때문에 ‘보는 사람’이나 ‘보이는 사람’이나 함께 스트레스를 주고 받는 경우가 많습니다. 타인의 시선을 너무 많이 신경 쓰면 ‘줏대 없는 사람’이나 ‘유행을 추종하는 사람’으로 보이고, 타인의 시선에 지나치게 관심이 없으면 ‘괴짜’나 ‘눈치 없는 사람’ 취급을 받을 수도 있지요. 하지만 그건 그냥 ‘취급’이고 ‘시선’일 뿐입니다. ‘시선’일 뿐 ‘진실’이 아닙니다. 정말 사교적인 삶을 추구하는 사람이라면, 타인의 시선에 신경 쓰는 것이 오히려 그 사람의 개성을 살리는 방법일 수도 있습니다. 많은 사람을 상대하는 일을 진심으로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타인의 시선’ 속에서 비치는 자신의 멋진 모습을 즐기는 경우도 있습니다.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 직업, 늘 타인의 시선 속에 노출되어 있는 직업을 진정으로 원한다면, 타인의 시선은 도망쳐야 할 대상이 아니라 ‘소통해야 할 대상’인 것이지요.

하지만 사교적인 삶에 관심이 없고, 자신의 내면에 집중하는 것을 더욱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타인의 시선에 신경쓰며 스트레스 받을 겨를이 없습니다. 자신의 일에 완전히 집중하는 예술가를 꿈꾸거나 과학자를 꿈꾸는 사람이라면, 굳이 ‘타인의 시선’을 신경쓰면서 괴로워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타인의 시선을 신경쓰면 진정한 창조성을 발휘할 수가 없으니까요. 다행히도 아직까지 우리 사회에는 ‘창조적인 일을 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최소한의 관용을 베푸는 경우가 있습니다. 우선 ‘내가 어떤 사람인가’를 아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사회생활을 통해서 느끼는 만족감에 커다란 비중을 두는 사람인지, 아니면 내면의 성찰과 나 자신을 향한 집중에서 더 큰 만족을 느끼는 사람인지. 스스로에게 질문해보는 시간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두 가지 모두 잘 한다는 것은 정말 하늘에 별따기랍니다. 저는 오랜 고민 끝에 후자를 선택했습니다. 선택하고 나니, 그 전에 겪었던 그 수많은 스트레스들이 많이 완화되었습니다. 물론 ‘완전한 자유’라는 것은 없지요. 하지만 ‘내가 무엇을 포기해야 하는지, 포기할 수 있는지’를 알게 된다면, ‘내 안의 작지만 소중한 자유’를 누릴 방법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럽젠 Q 머나먼 타인이 아닌 가족의 시선이 가장 부담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저는 어린 나이에 결혼을 해서 일찍 아이를 낳고 주부가 되었는데요. 시어머니는 저를 그때 너무 ‘어린 아이’로만 생각하셔서 제가 하는 모든 일에 일일이 간섭하시는 성향이 심했습니다. 그때는 저도 너무 어려 저항을 할 수가 없었는데, 결혼한 지 10여 년이 지나 지금은 제 나이가 적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저를 ‘못미더운 시선’으로 바라보시는 시어머니의 눈길이 너무도 부담스럽습니다. 사사건건 저를 무시하시는 시어머니의 모습을 보면, 언젠가는 제가 폭발해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괴롭습니다. 이런 시선으로부터 벗어날 방법이 없을까요?

사실 이런 경우가 가장 힘든 케이스지요. ‘타인의 시선’이 ‘내 삶’을 규정해버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저도 비슷한 경험이 있습니다. 바로 엄마와의 관계였는데요. 엄마는 저에게 너무 기대가 크신 나머지, 제 생활에 일일이 간섭을 하셨지요. 저는 계속 엄마로부터 도망칠 궁리만 했고요.(^^) 지금은 이렇게 웃으면서 말할 수 있지만,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저는 사실 엄마와의 관계가 매우 커다란 고민거리였습니다.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너무 사랑해서 문제였던 것이지요. 사실 ‘지나친 관심’이 ‘집착’으로 변하는 경우에는, 서로 어느 정도 떨어져 지내는 것이 나은 것 같습니다. 저는 엄마로부터 진정으로 독립한 후에, 비로소 ‘엄마의 끝없는 시선으로부터의 자유’를 얻었고, 또 몇 년이 지난 후 ‘내가 엄마를 바라보는 시선’도 나도 모르게 변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정말로 상대방의 시선이 늘 나쁘기만 했는지, 다시 생각해볼 여유가 생깁니다. 저도 어머니와 오래 떨어져 지내다 보니, 비로소 어머니의 지나친 기대와 관심이 이해되는 순간이 있었습니다. 그 엄청난 잔소리가 그리워질 때도 있고요. 서로에 대한 어느 정도의 ‘거리감’이 서로에 대한 시선을 성숙하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영화 ‘보이후드’ 속 한 장면. 엄마와 어린 아들이 서로 마주보고 있다.
서로를 이해한다는 것, 그것은 가장 가까운 가족이라도 쉽지만은 않은 일이다. (이미지 출처 : 네이버 영화 <보이후드> 스틸컷)

시어머니가 며느리 분께 못 미더운 시선을 보내시는 것은, 그 시선 속에서 시어머님이 어떤 ‘만족’을 느끼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며느리가 계속 ‘한없이 어린 존재’로 머무는 쪽이 시어머니께는 유리하게 비칠 수도 있습니다. ‘우리 며느리는 아직 어리니까, 나의 연륜과 지혜를 필요로 하는 존재야’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지요. 그것이 일종의 만족감을 줄 수도 있습니다. 시어머님의 관심을 다른 쪽으로 돌려보는 실험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늘 같은 주제로만 대화하지 말고, 시어머님이 무엇을 좋아하시는지, 시어머님과 함께할 수 있는 뭔가 따스한 ‘오락거리’가 없는지, 고민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직접적으로 부딪히는 것은 가장 안 좋은 방법입니다. 분노를 폭발시키면, 문제가 개선될 수 있는 가능성 자체가 완전히 닫혀버릴 수가 있습니다. 시어머니가 나를 믿어주길 바라신다면, ‘나’만을 앞세우지 마시고, 시어머니의 입장에서 시어머니가 좋아하실 수 있는 것, 나에 대한 지나친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릴 수 있는 경험을 시작해보세요. 영화를 본다든지, 연극을 본다든지, 하루 저녁 정도 ‘이전에는 전혀 해보지 않았던 경험’을 해보세요. ‘나’에게로만 향하는 다른 사람의 시선을 ‘다른 곳’으로 향하게 하는 것이 ‘서로를 향한 시선과 편견’을 교정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도 있습니다.

럽젠 Q 어떤 특정한 사람의 시선뿐 아니라 ‘사회가 나를 어떻게 바라보는지’도 정말 신경쓰이는 부분입니다. 특히 주변 사람들이 전체적으로 나를 어떻게 보는지가 굉장히 예민하게 느껴지는 요즘입니다. 오랜 취업준비생 생활에 지친 대부분의 젊은이들은 친구나 선후배의 시선, 가족의 시선, 주변 사람들의 시선, 명절에는 친척들의 시선까지 신경을 쓰게 되지요. 저 자신도 정말 하고 싶은 일은 따로 있는데 주변의 시선 때문에 조금이라도 더 안정적인 직장을 찾아야 하는 것인지, 고민 중입니다. 제가 정말 원하는 삶과 타인이 원하는 삶, 그 사이에 타협은 불가능한 걸까요.

아마 우리나라는 ‘또래압력peer pressure’ 문화가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나라가 아닐까 싶습니다. 또래압력은 꼭 같은 나이의 사람들에게만 한정되지 않습니다. 친구들이 뭘 하는지, 선후배들이 뭐라고 생각하는지, 친척이나 동네 사람들이 뭐라고 생각하는지, 심지어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페이스북 친구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걱정해야 하는 시대이니까요. 저는 타인의 시선 속에서 행복을 느낀 적이 별로 없습니다. 누군가 나를 칭찬해주는 순간조차도, 그 시선이 굉장히 불편하고 어색하게 느껴졌습니다. 누군가 비난을 한다고 해서 내가 작아지고, 누군가 칭찬을 해준다고 해서 내가 커진다면, 진정한 나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요. 저는 비난을 받든 칭찬을 받든 아랑곳없이 그저 ‘제 자신만큼’이고 싶었습니다. 지금은 오랜 고민 끝에 페이스북을 비롯한 모든 소셜 네트워크도 차단한 상태입니다. 그것이 꼭 ‘포기’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이렇게 글을 쓰고, 강의를 함으로써 ‘모르는 사람들’과 소통을 하고 있고, 직접 만나고, 이야기하고, 차를 마시며 ‘아는 사람들’과 소통을 하는 노력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 글을 누군가가 읽어준다는 것은 정말 행복한 소통의 기적이지요. 그리고 그분들이 가끔 독자편지나 리뷰 등을 보내실 때면 더더욱 힘을 냅니다. 물론 ‘말없이 고이 읽어주시는 독자들’의 ‘침묵의 소통’ 또한 저에게 커다란 힘이 됩니다. 페이스북에서 ‘좋아요’를 누르는 개수에 따라 우리 의견의 가치가 결정되는 것은 아닙니다. 내가 옳으면 됩니다. 내가 좋아하면 됩니다. 내가 올바른 방향으로 최선을 다할 수만 있다면, 그보다 더 큰 보상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원하는 삶’과 ‘타인에게 칭찬 받는 삶’ 사이에는 항상 거리감만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저도 거의 평생 그 고민을 해왔는데요. ‘다른 사람을 만족시키는 삶’에는 진정한 행복이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부모님이 저에게 원하시는 직업은 따로 있었는데, 저는 그 길로 정말 가고 싶지 않았거든요. 거의 20년 동안 부모님의 시선과 싸웠지요. 지금은 간신히 제가 원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오히려 격려해주시고 위로해주실 때가 더 많지요. 그러나 부모님과 저 사이에 이 평화가 찾아오기까지 무려 20년이 걸렸습니다. 고등학생 시절부터 갈등을 겪었으니까요. 지금도 완전히 만족하시지는 않는다는 것을 저는 잘 알고 있지만, 지금은 뻔뻔하게 ‘그래도 제가 행복하면, 엄마도 행복하시죠?’라는 식으로 부모님을 설득하기도 합니다.
정말 다행인 것은 ‘시간’이 많은 부분을 해결해준다는 것입니다. 내가 진정 포기하지 않고 내가 원하는 것을 향해 천천히 걸어간다면, 언젠가는 부모님은 물론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나를 향한 시선’을 바꿀 수 있게 됩니다. 그러려면 다른 사람들을 힐끗힐끗 엿보면 안 됩니다. 나 자신을 봐야 합니다. 나는 지금 내가 꿈꾸던 삶을 향해 한 발 한 발 다가가고 있는가. 나는 지금 내가 사랑하는 일을 계속하기 위해 간절한 노력을 하고 있는가. 이 질문이 훨씬 소중한 것이지요. ‘다른 사람들이 바라보는 나’의 이미지는 아주 순간적이고 일시적입니다. 나의 삶이 어떻게 바뀌느냐에 따라, ‘타인의 시선’이라는 무차별의 공격에 견딜 수 있는 ‘영혼의 면역력’이 강화됩니다. 그리하여 가장 중요한 시선은 ‘내가 나를 바라보는 시선’입니다. 내가 나를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결국 언젠가는 타인이 나를 바라보는 시선도 달라지니까요.

세 명의 사람이 상자를 쓰고 있으며, 상자에는 깨진 전구, 밝은 전구 등 여러 생각을 하는 듯한 그림이 그려져 있다.

에필로그: 타인의 시선과의 싸움, 견뎌야만 할 고통

우리가 ‘타인의 시선이라는 허구’와 싸워 이기기 위해서는, ‘내 안에 다양한 타인의 시선’을 만들어낼 줄 알아야 합니다. ‘저 사람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라는 수동적인 생각보다는, ‘내가 저 사람이라면 지금 어떤 상황일까’, ‘내가 저 사람이라면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지혜로울까’, ‘저 사람이 저렇게 행동하는 데는 어떤 이유가 있을까’를 냉철하게 생각해보는 것이 훨씬 사태파악에 도움이 됩니다. ‘타인이 나를 어떻게 바라보는가’가 아니라 ‘내가 타인을 어떻게 바라보는가’를 천천히 성찰해보는 것이 인간관계를 개선하는 데는 훨씬 절실한 문제제기입니다. ‘나를 향한 많은 시선들’을 걱정하기보다는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선’을 개발하는 것이 훨씬 도움이 됩니다.
예컨대 똑같은 사건을 바라볼 때도 A라는 사람은 오직 자기 입장만을 내세우는데, B라는 사람은 남녀노소의 입장을 상상하면서, 찬성과 반대 입장의 의견들을 두루 참작하면서, 그리고 그 모든 이해관계를 일일이 따져본 후 더 많은 사람들의 생각을 관찰하고 상상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여러분은 어떤 사람에게 더 호감을 느낄까요. 문제는 B와 같은 사람들을 찾기가 정말로 힘든 세상이 되어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가 속한 계급, 자신이 속한 집단, 자신이 선호하는 세력의 이해관계에 얽혀 ‘그들만의 리그’를 벌이려고 하지요. 님비현상은 말할 것도 없고, 전혀 자신에게 불이익을 줄 가능성이 없는 사람들에게까지도 ‘필요 이상의 쉴드’를 치는 사람들이 많지요. 임대아파트 거주 학생에게 ‘내 아이가 다니는 학교에 전학오지 말라’고 소리치는 일부 강남 엄마들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타인의 입장’은 전혀 생각하지 않는, 극도로 이기적인 행동이지요.

만약에 자신의 아이가 밖에 나가서 그런 대접을 받는다면 어떤 기분일지, 그 엄마들은 한 번이라도 생각해 본 적이 있을까요. 우리가 할 일은 A처럼 이기적인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B처럼 수많은 사람들의 입장에서 관찰하고, 상상하고, 성찰할 수 있는 ‘다시점의 인간형’이 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볼까’만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 쓸데없는 걱정을 할 시간에 ‘내가 다른 사람들을, 이 세상을, 이 사건을 어떻게 봐야할까’라는 고민으로 자신의 에너지를 쏟아 붓는 것입니다. ‘나를 향한 수많은 시선들’에 일희일비할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수많은 타인의 시점들을 개발하는 것입니다. 내 마음 안에서 수많은 타인들이 오순도순 살아갈 수 있게, 내 마음을 더 넓고 깊게 확장하는 것입니다.

저는 몇 년 전부터 이런 연습을 하고 있습니다. 인간관계에서 고통을 느낄 때마다 꽤 도움이 되는 방법인데요. 인간관계 때문에 힘든 일이 발생할 때마다, ‘내 입장, 내 기분, 내 상태’에만 초점을 맞추지 않도록, 최대한 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는 것입니다. 물론 아무리 ‘그 사람 입장’에서 생각해보려 해도,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화가 치밀어 오를 때도 많지요. 하지만 ‘나만 억울하고, 나만 당하고 있고, 나만 피해자다’라는 생각에 빠져 있는 것보다는 ‘그 사람은 나에게 왜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일까, 왜 나에게 그런 시선을 던지는 것일까’를 깊이 생각해보는 것이 사태를 해결하는 데는 훨씬 효과가 있습니다. ‘내 입장’만 생각하면 감정이 더 증폭되어 더 큰 분노에 사로잡히게 되지만, ‘그 사람의 입장’을 생각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감정보다 ‘이성’일 때가 많습니다. 우리는 다른 일에는 ‘이성과 합리성’을 엄청나게 강조하면서 정작 인간관계에는 ‘차분한 이성’을 발휘하지 못할 때가 많지요. 감정을 우선 가라앉히고, 좀 더 맑은 정신으로 ‘왜, 어떻게, 무슨 과정을 거쳐 이런 일이 일어났는가’를 생각해보는 것이 사태를 해결하는 더 지혜로운 방법입니다. ‘나를 향한 타인의 시선’이 아니라 ‘세상을 향한 나의 시선’을 바꾸는 것이 해답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는다면, 우리는 타인의 시선에 좀 덜 상처받고, 좀 더 관대해질 수 있지 않을까요.

P.s. 독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정여울의 관계학개론’에 정성스레 질문을 던져주신 분들에게 깊이 감사드립니다. 이번 호부터는 독자 분들의 실명을 직접 노출하기보다는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질문 사항을 묶어서 재편집해보았습니다. 굳이 몇 분만을 골라 소수의 질문을 채택하기보다는, 독자 여러분들이 궁금해 하시는 사항들을 되도록 모두 포함할 수 있도록 좀 더 포괄적인 내용으로 정리해보았습니다. 질문을 던진 당사자들만의 특수한 이야기가 아니라 ‘이건 내 이야기네’하고 공감하실 수 있는 이야기가 되기를, 관계학개론 시간이 여러분의 ‘관계 맺기’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Writer | 정여울
작가. 저서로 <내가 사랑한 유럽 top10>, <그때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들>, <마음의 서재>, <시네필 다이어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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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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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ihong17 2015/02/11 | 9:27 pm

    우리나라 사람들이 더 타인의 시선에 신경쓰는것 같기도 해요.
    덜 신경쓰고 나다움을 보여주는게..
    현명하지않을까 생각해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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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종혁기자 송종혁 2015/02/11 | 10:37 pm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문제들을 잘 집어주신 것 같아요! 항상 속으로 앓기만 했던 묵은 숙제들을 꺼내어 놓은 기분이네용, 좋은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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